Chapter 26
1.
[그러고보니 나나시, 최근 유명한 소문이 하나 있는데 알고 계시나요?]
“……소문이요?”
[네, 조만간 생텀타워가 복구된다는 소문이에요. 거기다 총학생회에 새로운 선생님이 한분 오신다고.]
“으음.”
예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않아 생텀타워와 선생에 대한 정보가 세간에 풀려났다.
약 한달 가까이 정지되어있던 생텀타워가 곧 복구된다는 내용, 그리고 이번에 키보토스 외부에서 오시는 새로운 선생이 그 해결책이 될거라는 이야기.
누군가는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했으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번 소문의 진원지가 아마 총학생회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애초에 소문에 대한 부정도 없이 침묵으로 고수하고 있는 총학생회의 모습을 보면 정답이 나오지않나.
“그렇군요.”
[……재미없는 반응이네요. 생텀타워가 정지하면서 누구보다 고생했던 당신이기에 더 격한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서.”
[또 그놈의 직감인가요? 정말 이럴 때마다 당신의 그 직감이야말로 초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언젠가 그 직감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봐야할거 같지 않나요, 나나시?]
“하하…….”
솔직히 나도 부정은 못하겠다.
안그래도 이젠 빈말로도 ‘초감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 위력이 거세졌으니까.
내가 밋밋한 반응을 보이니 흥미가 떨어졌는지 흥- 하며 히마리가 내는 콧바람 소리가 귓가에 잡혔다.
쓴웃음을 지은 나는 빠르게 주제를 넘기기로 하며 히마리를 재촉했다.
“선배, 그것보다 빨리 위치 좀 알려주세요.”
[그래요. 하아, 나나시는 또 저를 만능 네비게이션으로 써먹는군요.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인 저를 이렇게 써먹기만 하다니 건방진 후배에요, 정말. 아, 정면에서 5m 기둥 뒤에 한놈 있네요.]
“확인했습니다.”
히마리는 내 대답에 불평을 표하면서도 꼼꼼하게 적들의 위치를 체크해주며 내게 알려왔다.
나는 히마리의 안내에 따라 기둥 쪽으로 달려가 적을 단숨에 제압하곤 거미줄을 발사해 공중에 매달았다.
“으아아악!”
“이걸로 스물셋. 이제 끝인가요?”
[네. 현재 감지되는 생체반응은 없네요. 이제 빠져나오도록 하세요. 발키리에 연락은 제가 해놨어요.]
“알겠습니다.”
빨리 빠져나오라는 히마리의 말에 간단히 대답을 마친 나는 몸을 돌려 내가 만들어낸 참상을 보았다.
아니, 참상은 아니지. 그냥 빌런 녀석들을 싹 다 천장에 묶어서 매달아 놓은 것 뿐이니까. 머리에 피가 몰리고 다리가 아파오겠지만 나쁜 놈들한테 내가 그런 사정까지 봐줘야하겠는가.
내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빌런놈들의 아래를 빠르게 지나치며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거미줄을 발사해 하늘을 날기 무섭게 등 뒤에서 발키리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나 빨리?
“왠지 전보다 더 빨라진거 같은데.”
[왜겠어요? 나나시 때문이죠.]
“엥. 저요?”
내가 왜.
나 뭐 안했는데.
[……진심은 아니죠? 요즘따라 그 괴상한 직감에 적응하겠다고 D.U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나나시가 처리하고 있으니 발키리가 저러는거잖아요.]
“아하.”
내가 발키리가 할 일을 다 뺏어가서 그런거였어?
‘어차피 조만간이면 활동영역을 넓힐 예정이라 발키리가 할 일은 자연스레 많아질텐데.’
생텀타워가 복구되는 즉시, D.U에서 활동은 점차 줄이고 다른 자치구에서의 활동을 늘려서 메인스토리와 이벤트 스토리 등에 개입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세워놓은 활동 목표 중 하나였다.
D.U와는 다르게 발키리의 무전을 감청하는 등의 정보 획득이 불가능한 만큼, 감각을 활용하는 일에 더 익숙해져야만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감각을 넓게 퍼뜨려서 사건을 감지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전투 상황에서는 이러한 초감각을 극한으로 줄여서 오직 위험감지 능력으로만 사용하고 말이다.
이 또한 유사시에 초감각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도록 단련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맞다, 히마리 선배. 아직까지 엔지니어부에서 따로 연락온건 없었죠?”
[네. 아직은 잠잠하네요. 아무래도 나나시가 의뢰한 장비의 내용이 괴랄한 탓에 그런가봐요.]
“음. 솔직히 부정은 못하겠네요.”
이번에 의뢰한 ‘비브라늄 방패’는 솔직히 현실적인 과학 기술로는 모든 기능을 재현하기 힘드니까.
그래서 일부 중요한 기능만 부탁하기는 했는데, 그 부분 역시도 순식간에 제작이 가능하진 않았다.
물론, 우타하가 어떻게든 만들어낼 것이라며 불을 붙이긴 했지만…….
솔직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저 믿을 수밖에. 난 우리 엔지니어부 믿어.
2.
– 때가 되었다.
문득, 머릿속에 그런 문장이 흘렀다.
당혹스럽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며 여전히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부원들에게 말했다.
“선배. 에이미. 저 잠시 나갔다올게요.”
“어디 가시나요?”
“잠시 D.U에요. 아무래도 온거 같아서.”
“네? 뭐가- 서, 설마 소문의 그 ‘선생님’이 지금 오셨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히마리는 내 태평한 대답에 입을 쩍 벌렸으며, 그 에이미마저 당황스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진짜 초현상인데?”
“그러게요. 대체 어떻게 그 거리를……?”
당장이라도 날 붙잡아서 연구하려는 탐구자의 것으로 시선이 돌변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부실 바깥으로 피난하듯 빠져나왔다.
나도 내 능력을 연구하는건 환영이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이 세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날이었으니.
얼굴 위로 가면을 쓰며, 순식간에 하늘을 날았다.
도심을 빠르게 이동하며 밀레니엄 부지를 넘거 순식간에 D.U로 향했다.
지금껏 수없이 뛰어넘었던 건물들을 지나 마침내 총학생회 건물로 도착했을 순간, 나의 감각이 어느 한 방향으로 집중되며 그곳에 있는 존재를 붙잡았다.
“…….”
각 학원에서 찾아온 네 명의 학생과 그런 그녀들을 뒤따르는 한 ‘남성’이 보였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성별, 머리 위에 존재하지 않는 헤일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있는 모습까지.
선생. 이 세계의 진짜 주인공.
그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학생들을 지휘하며,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불량배들을 물리치고 있다.
“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며 탄성을 내었다.
아예 옥상에 걸터앉아서 그가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게임에선 2D로만 나왔기에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현실에 연출되고 있었다.
순간, 도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관뒀다.
다른 일도 아니고 프롤로그인데. 이걸 개입하기는 좀.
‘그냥 지켜보자.’
게임의 프롤로그 장면인데,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 해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현실이기에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다른 순간이라면 몰라도 프롤로그는 구경하고 싶었다.
거기다,
“……역시, 와카모는 나타나지 않았나.”
내가 만들어낸 변수도 확인하고 싶었고.
일전에 대결이 영향을 주었는지 와카모는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어디서 소식을 접했는지 샬레의 부실에서 훔칠걸 찾는 불량배만 있을 뿐.
“으음.”
내가 만들어낸 변수다. 그 수습도 내가 해야겠지.
메인스토리나 이벤트 스토리에 생길 공백도 내가 대신해서 매꾸면 될 일이긴 했다. 선생은 앞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였으니 내가 다른 이들을 대신해 도우면 된다.
혹은, 내가 직접 개입해서 해결해도 되고.
‘내가 뿌린 씨앗이니, 거두는 것도 직접 해야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더 고생하게 생겼다면서 살짝 슬퍼하고 있던 그 순간.
츠즈즉-!
“응? 방금 눈이-”
저 멀리서 학생들을 지휘하던 선생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소음이 들렸다.
마치 노이즈가 이는 듯한 소음.
소음의 진원지는 품 속이었다. 뭐지 싶어서 꺼내보니 정체는 다름아닌 밀레니엄의 디지털 학생증.
“어?”
그것을 확인한 순간, 내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뭐야?”
[이름 : 나나시 히이로]
이름이 생겼다.
이제껏 가려져있던 이름이, 모자이크가 지워졌다.
갑자기 왜 지금 순간에 이름이 생긴거지? 진짜 뭐임?
경사 같은 일이었으나 나는 미묘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조금 이상했기에.
“나나시, 히이로……?”
나나시는 편의주의적으로 불리던거 아니었어?
그리고, 애초에 이름이 왜 이래?
‘이름이 없는게 내 이름이냐?’
어떻게 이런 성의없는 이름이 다 있는거지.
그렇게 속으로 불평을 내뱉던 사이, 어느샌가 선생은 거리의 불량배를 다 몰아내고 샬레의 부실로 들어가버린지 오래였다. 다른 데에 시선이 팔려 프롤로그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서 이름 왜 생긴거냐고.
프롤로그, 혹은 선생이랑 만나는게 조건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가?
‘모르겠는데.’
도저히 짐작가지 않는 변화에 깊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띠링-!
[히마리 선배 : 방금 생텀타워가 복구되서 다시금 통신이 가능해졌어요. 정말 어이가 없는 직감이네요?]
어느새 선생이 싯딤의 상자로 생텀타워를 복구해냈는지 밀레니엄에 있을 히마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말은 즉-’
나는 히마리의 연락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생텀타워에 생겨난 변화를 확인했다.
키보토스 중심에 위치한 첨탑.
모든 인프라를 관리하는 생텀타워에서 지금까지는 없던 찬란한 빛무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가.”
블루 아카이브.
내가 빙의하게 된 모바일 게임.
그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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