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17



그 순간 내 머리는 초속 50만km의 속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누가 봐도 수상한 표지의 야설.

그걸 다급히 레티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레티.

그리고 이 상황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릴리스.

곧이어 뇌에서 결과가 출력되었다.

-노 답.

“아, 좆됐다.”

뇌가 생각하길 포기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 있었다.

뇌가 과부화되어 퓨즈가 끊긴 것마냥 기억도 뚝 끊겨 있었다.

“내일 봐 아서!”

레티가 먼저 교과서를 챙겨 일어났지만 나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릴리스 때문에.

“……..”

“……..”

계속 이어지는 침묵에 숨이 턱 막혀왔다.

학생이 전부 빠져나가 단 둘만 남은 강의실에 소리가 들린 것은 내가 질식하기 일보 직전에 일이었다.

“…..그런 취향?”

릴리스의 적안이 가늘어졌다.

“아뇨!? 절대 아닙니다! 저건 그냥 레티가 마음대로 가져온 거지. 결코 제 취향이 아닙니다!”

“흐응~”

“릴리스, 제발….”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구하는 나를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던 릴리스는.

“알겠어.”

“후아아…..”

그제야 나는 묵은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밥 먹으러 가자-”

내 품으로 뛰어든 릴리스를 받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촉수성애자씨.”

라며 릴리스가 툭 던진 말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미치겠네.

—-

싸늘하다. 가슴에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흐응~”

“뭐, 뭔가요.”

“아니, 그냥~”

부담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그렇게 부드럽던 올드 원 구이도, 그렇게 달달하던 황금 벌꿀주도, 흙을 씹으며 강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맞은 편에서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계속 이상한 추임새를 넣고 있는 릴리스 덕분이다.

젠장, 레티! 너 내일 두고보자!

“헤에~”

“……”

아, 체 할 거 같아….

눈물이 찔끔 날려고 할 때 쯤.

“아서.”

내 맞은 편에 있던 릴리스는 어느새 내 바로 옆자리로 와있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게 누구라고?”

“…접니다.”

“따라서 나는 네 취향이 어떻든 얼마든지 받아줄 의향이-”

나는 저 말이 릴리스 입에서 나오는 것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입 안에 있는 음식물을 재빨리 삼켜버리고 릴리스의 입을 내 입으로 막아버렸다.

“으뭄…으므믐!”

말을 끊어서인지 항의하는 듯 입을 우물거리는 릴리스지만.

그것도 잠시, 릴리스 쪽에서도 호응을 해왔다.

은색 실과 함께 입술이 떨어지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또 그 얘기 하면 다시 막아버립니다.”

당당하게 선언하는 내게 릴리스가 싱긋 웃어보인다.

“그럼 계속 얘기하면 계속 키스할 수 있는 거?”

“……예?”

아니 그걸 그렇게 이해하신다고요?

“촉수성애자.”

한마디를 툭 던진 릴리스가 눈을 감고 기다린다.

얼척이 없어서 바라만 보고 있자니 힐끔 눈을 뜬 릴리스가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왜, 막아준다며? 촉수-”

에라 모르겠다.

일단 달려들어 릴리스의 입술을 덮친다.

-쪽

“변태-”

-쪽

“촉수-”

-쪽

“이상성욕-”

-쪽

입술 사이의 틈이 벌어질 때마다 툭툭 던지는 말에 나는 계속해서 릴리스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릴리스의 식사까지 끝내버린 우리는 침대에 들어와 있었다.

“후훗, 잔뜩 해버렸네.”

“누가 들으면 오해 살만한 말은 자제해주세요.”

“완전 틀린 말은 아니잖아?”

“릴리스 제발….”

내가 오늘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지?

“알겠어. 그만 놀릴게…..하나만 답해주면.”

“…뭔데요?”

불안한 마음 밖에 들지 않는다.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가는 릴리스.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아는 거지?”

“그렇죠?”

“그러니까. 네 진짜 취향을 말해주면 되겠네.”

“……넹?”

아니 이게 무슨…

“자, 말해주시죠? 아서의 진정한 취향.”

“아니…. 그렇게 갑자기 물어봐도…”

곧장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머, 설마 부끄러운 거니?”

당연한 거 아닐까?

가족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을 고백하라니?

“뭐, 부끄러우면 말 안해도 되고. 대신 말해줄 때까지 널 촉수성애자라 부를거지만.”

크윽… 회피불가다.

취향 고백이냐, 촉수성애자로 남을 것이냐.

결국.

“제 취향은….”

나는 떨리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는 릴리스를 향해….

“검은 머리카락입니다.”

“…..응?”

“그리고 빨간 입술입니다.”

“……”

“하얀 피부에….아, 오똑한 콧날도 좋습니다.”

“따뜻한 온기도 좋습니다.”

“포근한 품도 좋습니다.”

“가느다란 손가락도, 그 끝에 달린 뾰족한 손톱도, 전부 좋습니다.”

릴리스의 표정이 서서히 바뀐다.

장난기가 사라진 그곳에는 미약한 부끄러움이 들어선다.

“밤하늘 같이 까만 눈을….아! 루비처럼 예쁜 눈도 좋아합니다.”

이쯤까지 보았을 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릴리스를 묘사하고 있었다.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 속에서, 마주보고 있는 릴리스를 실시간으로 훑어보며 그녀의 외견을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자상하고 따뜻한 심정도, 새침하고 장난스런 성격도, 요염하면서도 귀여운 행동도, 전부 좋아합니다.”

앞서 말한 외견을 채우는 내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취향 고백을 마쳤다.

이름은 단 마디도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 묘사의 대상이 명백한 상황.

릴리스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아, 하나 더. 부끄러우면 본인도 모르게 빨개지는 귀까지…..좋아합니다.”

이에 다급히 귀를 가리는 릴리스.

봐봐, 저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안 반하냐고.

“…..진심?”

다 듣고는 첫마디가 저거다.

뭐, 부정의 대답을 원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기대를 산산히 부숴주자.

“완전 진심인데요.”

“으으….”

아, 부끄러워 한다.

저번처럼 얼굴을 가리며 돌아 눕는 릴리스.

“으으으….”

여기서 더 들이대면 뭔가 일어날 것 같다.

일단은 진정하도록 조금은 기다려주자.

—-

“진정했어요?”

“응.”

아직 귓볼이 조금은 빨간 것이 눈에 띄였지만, 일단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오늘 릴리스가 보여준 그 광선. 그게 최대로 강하게 날린 거예요?”

주제가 달라지자 빠르게 정신을 차리는 릴리스.

“음…. 그건 아닌데. 일단은 거기서 더 강하게는 힘들 수도.”

“힘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요?”

“그것도 있지만, 가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보면 안되거든.”

흠…. 여러모로 제약이 있는 모양이다.

막 갈기면 안되겠-

“아, 그래도 그 광선 정도라면 마음껏 쓸 수 있어.”

….그걸 마음껏이요?

릴리스가 중얼거리던 아카데미 멸망 시나리오는 거짓이 아니었다.

‘이, 이게 외신?’

새삼 외신과 인간의 격차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가는 바로 압류 판정이겠지. 그러면 바로 아카데미 멸망 시나리오 스타트다.’

“릴리스 혹시 다른 능력…. 좀 덜 과격한 거 없나요?”

“힘조절이 필요하단 말이지? 보호막, 마법, 흑마법, 저주, 순간이동. 이 중에서 골라볼래?”

단어를 나열하는 릴리스를 멍하니 바라본다.

…뭐가 저리 많아?

“우선 인간을 상대로 할 때는 죽이지 않을 정도요.”

문득 스쳐지나가듯 떠오르는 광선의 굉음.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귀가 다 아파왔다.

“그리고 가능하면 조용한 걸로.”

“음…그러면 저주가 가장 좋겠네.”

“…저주요?”

이름만 들어도 벌써 불안했다.

내 표정을 읽은 릴리스가 밝게 웃어보였다.

“걱정마. 저주의 대부분은 살인보다는 괴롭힘에 치중되어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이를테면…..평생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저주?”

살인보다 더 악독한 저주 아닙니까, 그거?!

“아, 남자에서 여자로 바꿔버리는 저주도-”

“릴리스.”

“알았어. 그만할게. 장난처럼 말했지만 가장 추천하는 건 저주가 맞아. 저주의 가장 큰 장점은 은밀함이거든.”

“그럼 교수님한테는 일단 광선과 저주만 말할게요. 다른 건 사람들 앞에서 쓰지 않기로 하죠.”

“보호막도 추가해줘. 널 지켜줘야 할 때 다른 사람 눈치 본다고 못 지켜줄 일이 생기면 안되잖아?”

“네, 그럼 보호막까지.”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이미 평범한 소환수의 단계는 진작에 넘어섰다.

운석급 파괴력을 가진 광선을 쏘며, 은밀한 저주에 보호막까지…

소환마법의 대가도 이런 소환수를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릴리스…. 분명 밤의 여신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가진 능력만 보면 전쟁의 여신이 아닐까 의심된다.

“애초에 그 밤의 여신이라는 이름도 인간들이 붙인 거야.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를 밤의 여왕으로 부르지.”

이명과 능력이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확실히 외신은 다른 신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리, 그러니까 아우터 갓들은 인간들이 말하는 신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존재야. 내 힘이 온전했으면 행성도 쉽게 멸망시킬 수 있어.”

….스케일이 다르고만. 기껏해야 한 나라 정도라 생각한 내가 멍청했다.

“하지만 이전에 왔던 외신들은 그 정도 힘을 보여주진 못했는데요?”

“아, 걔네들은 그레이트 올드 원. 아우터 갓 범주에도 못 들어.”

아니…. 도시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가는데요?

“참고로 아우터 갓 사이에선 딱히 의미 없는 짓이긴 하지만 굳이 급을 나누자면 난 중상위권 수준이야.”

이쯤 되니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제일 강한 아우터 갓은 얼마나 세요?”

서열 논쟁은 언제나 재밌지.

“음….그 분의 힘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야. 애초에 싸울 일도 없을 테니까.”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내 경악스런 표정을 본 릴리스가 짧게 웃으며 말하길.

“후훗, 그 분은 우주의 중심에서 잠들어 계셔. 언제 깨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지.”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 데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릴리스의 얼굴에 공포라는 감정이 스쳐지나간 것을 읽어냈다.

“음….. 가능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같은 아우터 갓마저 경어를 사용하며 두려워하는 존재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 존재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늘 그렇듯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릴리스의 굿나잇 키스를 마지막으로 잠에 들기 직전, 뇌리를 스치는 생각.

‘….잠깐 네크로노미콘에 그 아우터 갓에 관한 내용이 나올려나?’

언제 한번 찾아봐야…….흠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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