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22



잠깐 몇 분 전을 되돌이켜 보자.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그나마 정신을 차린 나는 릴리스에게 아카데미로 돌아가자고 제안을 했고, 이에 릴리스는.

“오늘 꼭 돌아가야 해?”

라고 되물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내가 벙찐 표정으로 있자 릴리스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착한 곳은 세련된 현관을 가진 고급 숙박시설.

나와 릴리스를 번갈아 본 직원은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방키를 건넸다.

그때까지도 나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상태였고, 릴리스의 이끔에 따라갈 뿐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릴리스는 먼저 씻겠다는 말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고….

그렇게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점점 현실감이 돌아오고 상황을 짜맞춰보니 도출되는 답.

“…..각?”

이거…각이냐?!

머리를 망치로 때린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정신이 확 돌아왔다.

힐끔 본 화장실은 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이따끔씩 사라졌다 돌아오며, 그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물소리 또한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닌, 무언가에 한번 걸쳐졌다가 뭉쳐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오늘 꼭 돌아가야 하나고 물어본 릴리스.

누가 봐도 그런 분위기의 숙박시설.

그리고 먼저 씻겠다고 나선 릴리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쪽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진심이야?!’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았다.

‘릴리스와 내가…? 무, 물론 시,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찌릿한 긴장감에 다리가 절로 떨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마저 흐르던 그때.

“아서. 여기 수건 좀 가져다 줄래?”

“네, 넵! 수건이요?!”

“응, 안쪽에는 없네.”

벌떡 일어나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 여기 있어요!”

-벌컥

“이리 줄래?”

“!!!!!”

화장실 문이 열리며 릴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도 문이 옆으로 나 있어서 각도 상 안쪽은 보이지 않고 튀어나온 손만 보였지만….

‘진정 좀 해라 심장아!!’

빠져나오는 수증기와 물기가 있는 릴리스의 손의 아름다운 자태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올랐다.

천천히 다가가 고개를 돌리며 릴리스에게 수건을 건넸다.

“여, 여기요…”

“고마워. 너도 씻어야 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엡!”

잠시 뒤 화장실에서 나온 릴리스는 뽀송뽀송 개운해 보였다.

“후우~ 씻으니까 개운하니 좋네. 너도 빨리 씻어.”

머뭇거리며 들어간 화장실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습기 속에서 느껴지는 옅은 향기.

내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한다.

“…..미치겠다 정말.”

—-

샤워를 마친 나는 무심코 선반을 뒤져 수건을 찾으려 했다.

“아, 수건 여기 없다고 했-”

그 순간. 내 손끝에 닿은 무언가.

곁면만 스치면 가슬가슬하지만 한번 눌러보면 푸욱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운 것이…..어라?

이건 여기에 있으면 안 돼는 건데…?

“수건?!”

하얀색에 보슬보슬한 촉감을 가진 수건이었다.

내 손에 들려진 수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이마를 싸쥔다.

“또…당했어…!”

그냥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가져오라 시킨 것이 틀림없다.

“…..미치겠네 정말.”

그 수건으로 빠르게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낑겨 입고는.

“릴리스!”

나는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 릴리스에게 따질려고 했지만.

“응?”

대답과 동시에 나를 돌아본 릴리스는….

“….어…..”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잠옷을 입고 있었다.

‘저런 걸 네글리제라고 하던가?’

어떤 책에서 그 이름을 보았던 것 같다.

늘 그렇듯 검은 색으로만 이뤄진 그 옷은 하얀 피부를 가진 릴리스와 잘 어울렸다.

그 복장으로 침대에 반쯤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신화 속 여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신 맞긴 하지만.’

내 시선을 눈치챈 릴리스가 눈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왜에~? 무슨 문제라도?”

릴리스의 눈웃음에 마음이 깨끗히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따지려던 마음도 싹 사라져 지금 내 가슴에는 두근거림만 남아있었다.

릴리스가 이불을 쓱 걷어 공간을 만들고는 자신의 옆을 톡톡 두드렸다.

“이리와.”

나도 모르게 침대로 다가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코를 자극하는 짙은 향기.

그 달콤한 향기에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버리며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다가오는 릴리스를 저지한다.

“릴리스. 저는-”

“알아.”

“…….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안다는 말인가?

저지하기 위해 뻗어진 내 손을 잡아당긴 릴리스는 자신의 베개를 밀어버리고 대신 내 팔을 베고 누웠다.

“파…팔베개?!”

당황하는 내 뺨에 릴리스의 손이 올라간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

“그렇지?”

철자 하나 안 틀리고 내가 하려던 말을 정확하게 가로채는 릴리스.

그렇다. 우리는 가족이다. 그 어떤 가족이 그…..런 행위를 하겠는가.

샤워를 하며 고민에 고민을 계속 이어갔지만 결국 이런 답이 나와버렸다.

“우리가 가족인 이상. 선을 넘으면 안되는 거지?”

“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릴리스가 소중해요.”

내 진심을 담은 고백을 릴리스는 담담히 들어주었다.

“저도 한 사람의 남자로서, 릴리스가 너무도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가족으로서 릴리스도 무척이나 소중해요.”

나에게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했다.

가족이 고팠기에 그런 소원을 빌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가 만나게 되었다.

릴리스를 통해서 누군가가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 가족이라는 관계성도 포기하기 싫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어버린다면 이런 관계가 깨져버릴까봐.

나는 두려웠다.

“후훗, 아서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릴리스는 어쩌면 억지에 가까운, 아니 그냥 억지투성이인 내 의견을 받아주었다.

“수건.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부르신 거죠?”

애초에 릴리스가 씻는다는 그 행위조차 이상했다. 마음만 먹으면 1초만에 완벽하게 청결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릴리스면서 굳이 샤워를 한다? 말이 될리가 없다.

릴리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피, 나름대로 노력한 건데 말이야. 혹시라도 넘어올까봐.”

“죄송해요. 저도 그러고 싶기는 하지만….”

“아냐. 내가 미안한 거지. 나도 마음이 조급했나봐.”

릴리스가 다가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나는 얼마든지 기다려줄게. 네가 준비가 되었을 때, 나와의 관계를 바꾸고 싶을 때, 네가 직접 말해줘. 언제든지 받아줄 테니까.”

내가 한 말은 내가 생각해도 억지가 가득한 헛소리였다.

여자로서의 릴리스도, 가족으로서의 릴리스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어지간히 욕심쟁이인 것 같다.

“고마워요 릴리스. 이런 저까지 받아준다고 말해주셔서.”

“아니야. 오히려 이런 너라서.”

릴리스가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싱긋 웃었다.

“좋아해.”

-두근

아, 결심이 한순간에 무너질 뻔했다.

저 미소 너무 사기적인 거 아니냐고.

“저도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얼굴이 가까워지고 호흡이 얽혔다.

-쪽

“…가족이라면서. 키스는 해도 되는 거야?”

물론 말과 행동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여기에는 할 말이 있었다.

나는 웃으며 언젠가 릴리스가 내게 해준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어라? 키스 정도는 가족끼리도 서슴없이 하는 거 아니었어요?”

솔직히 이미 잔뜩 해버린 마당에 여기서 그만하라고 해도 무리였다.

그리고 약간의 핑계를 좀 섞어주자면.

“릴리스 오늘 식사 안했죠?”

“….응.”

“지금 할까요?”

“….못됐어.”

나는 릴리스와 식사를 할 뿐이다.

물론 생명력을 빨아내는 순간은 매우 짧았고 그에 비해서 식사시간은 매우 길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

오늘도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

이런 상황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놀라지도 않게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내가 명령어를 발음하자 암막커튼이 스르르 움직여 적당한 양의 햇빛을 들여보냈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릴리스의 뽀얀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만 생각해보면 매번 이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조금은 작위적이지 않나요?”

아무리 릴리스가 잠을 자긴 한다지만, 매일 내가 먼저 일어나는 것도 좀 이상했다.

나는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다.

“가끔은 릴리스가 깨워주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러자 릴리스의 호흡이 약간 흐트러진 것은 기분탓이라고 생각하자.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날 기미가 없는 릴리스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결국 잠자는 공주님은 키스를 받아야 일어날 것 같다.

-쪽

-쪽

-쪼옥!

그러자 릴리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잘잤어요. 릴리스?”

“응. 아서는?”

“저도요.”

“아침은 뭘로 먹을래?”

“…..아무거나요.”

“으음… 그게 가장 어려운 대답인 거 알고 있어?”

“하지만 릴리스가 해주시는 건 뭐라도 맛있어서 정하기 힘들어요.”

“푸흐흐…. 그건 그렇지?”

-쪽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릴리스가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 기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릴리스 또한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호응해 왔다.

-쪽

-쪽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평화로운 휴일 아침을 맞이했다.

—-

아침은 오랜만에 올드 원 구이였다.

….오랜만 맞나?

‘하루 정도면 오랜만이지, 음.’

올드 원의 속살을 한입 씹자마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거지!’

어제 갔던 고급 식당도 비싼 만큼 맛있는 좋은 음식점이었지만, 릴리스가 직접 해주는 음식에는 감동이 있었다.

“맛있어?”

나는 릴리스의 볼에 짧게 입맞춤하며 답을 대신한다.

내 식사와 릴리스의 식사 모두 마무리한 우리는 나란히 세면대 앞에 서서 양치를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릴리스는 딱히 양치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뭐…..안할이유도 없으니까.

‘뭐랄까…. 이러니까 정말 부부 같네….’

힐끔 릴리스를 보자 눈이 딱 마주친다.

싱긋 웃어보이는 릴리스와는 다르게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어젯밤에 내가 한 말을 돌이켜 보았다.

사랑은 하지만 가족으로 남아달라니…. 이 얼마나 정신나간 발언인가.

그걸 또 받아주는 릴리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회상 도중, 이걸 보답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미안함을 덜어낼 방법이 떠올랐다.

입 안을 가득 채운 거품을 뱉어냈다.

“릴리스.”

“웅?”

“역할놀이 하실래요?”

“…..웅?”

릴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살짝 부풀어진 볼의 릴리스가 눈마저 크게 뜨고 있으니 너무 귀여웠다. 그 모습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받아들인 걸로 알고 말할게요.”

“사랑해요 릴리스. 저랑 사귀어주세요.”

-땡그랑

세면대에 릴리스가 들고 있던 칫솔이 소리내며 떨어진다.

“뭐, 뭐어어엇?!”

[!– Slider main container –]


[!– Additional required wrapper –]






Tip: You can use left, right, A and D keyboard keys to browse between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