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소리가 사라진 고요한 수련장.
남자는 들어올린 팔을 서서히 내렸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이군.”
남자의 시선이 넓은 수련장에 바닥, 정확히는 바닥에 늘어져 있는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향한다.
모든 학생들은 다양한 자세로 바닥에 붙어있었는데. 하나같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가슴이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잘 걸려서 다행이네. 매 학기 꼭 한두명씩 멀쩡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한명, 꽤나 힘들었던 녀석이 있어.
“누구. 아, 이 학생?”
그의 시선이 회색머리의 연약하게 생긴 한 남학생에게 향했다.
그 학생의 품에서 고로롱거리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저 고양이.”
-네 예상대로였어. 이 은하의 생물이 아니야.
“…외신?”
-음… 조금 애매한데. 일단 아우터 갓은 아닌 것 같아. 가진 힘이 너무 약하거든.
남자는 자신의 추측이 살짝 빗나가긴 했지만 어쨌든 대략적인 갈래는 맞았다는 것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긴, 그들이었으면 이런 허접한 방법에는 걸리지 않겠지.”
-이봐, 내 권능이거든? 넌 꼭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 만약 내가 없었으면 넌 아직도 그레이트 올드 원 뱃속에서….”
뭐라뭐라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남자는 고양이를 일별하고 의자에 앉았다.
“후우…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혹시 모르지. 하루만에 탈락하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설마. 이번 기수는 수준이 높은 편이야….한명만 빼면.”
-하지만 그 한명이 최대의 변수가 되겠…아니 되었지.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챈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자신의 뼈아픈 실수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필 마력이 없는 학생이 입학하고, 하필 그 학생이 금지구역에, 하필 ‘그 서가’에 들어가다니… 우연도 이정도면 필연이라 불러야 겠군.”
-낄낄낄 마력이 강할 수록 저항력이 강해지는 결계. 잠깐이지만 아우터 갓도 막을 수 있게 설계되었건만 평범한 인간한테 뚫리다니.
“…마력이 단 1도 없다니. 그런 인간이 존재할 거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어.”
-우리의 완벽하신 총장님이 사실은 이렇게 허점 많은 인간이라니. 학생들이 알면 놀라겠구만.
총장이라 불린 남자는 하늘을 노려보았다. 비록 천장으로 막혀있긴 하지만 총장은 알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잔말 말고 학생들이나 살펴라 히프노스. 아무리 꿈이라고 한들 죽음의 대한 경험은 영혼에 새겨지는 상처니까.”
다시 생각해봐도 기발한 방식이었다. 진짜 공간균열에 학생들을 넣어버리면 변수가 너무 많았다. 만약 알아채기도 전에 학생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대참사였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을 하나의 꿈에 넣고 공간균열이라고속인다면? 죽어도 죽지 않는 완벽하게 안전한 시험이 만들어진다.
-예예, 안 그래도 지금 살펴볼려고 했…….
갑자기 조용해진 목소리에 총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히프노스?”
-어….음……..어라?
“무슨 일이지?”
-……조짐.
“?”
-학생들이 내 꿈에 없어.
-쿠당탕!
의자를 넘어뜨리며 일어난 총장이 황당한 시선을 하늘로 보냈다.
“뭐야?! 그럼 어디 있는데?”
-잠깐만….지금 찾아볼게….
그리고 잠시 뒤.
-……이런 빌어먹을.
“어디 있는데.”
-…드림랜드.
“…뭐?”
총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믿기 힘들겠지만 진실이야. 드림랜드에 있어.
“도대체 어쩌다가!!”
자신의 금발을 한웅큼 움켜쥔 총장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짓을 할만한 녀석은 딱 한놈 뿐이지.”
-아…설마….
그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면상을 떠올린 총장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니알라토텝!!”
저주 받을 악연이 은하를 넘어 여기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에 총장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간신히 들끓는 속을 가라앉힌 총장은 굳은 입을 힘겹게 벌렸다.
“…우선 학생들 안전부터 확인해.”
-음…일단 멀쩡하긴 한데…
“꺼낼 방법 있어?”
-…당장은 불가능. 안에 있는 학생들이 드림랜드에 있는 나를 찾아와야 해.
“네가 찾아가는 건 안 돼?”
-미안하지만 니알라토텝이 나선 이상. 나는 더 나설 수가 없어.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빌어먹을…”
그때, 자신의 악연과 라이벌 관계에 놓인 존재를 떠올린 총장.
“노덴스! 노덴스에게 부탁한다면-”
-미안하지만 노덴스는 최근 드림랜드에 오지 않았어. 올 이유가 사라졌다나 뭐라나.
“그래도 니알라토텝이 얽힌 일이야. 노덴스가 이걸 마다할리가 없잖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놈 연락 자체를 안 받아. 무슨 일 있는 모양인데…
“…빌어먹을. 꺼낼 방법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총장은 착잡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드림랜드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총장의 시선이 한 곳에서 머물렀다.
“결국 네가 변수가 되줘야 겠구나. 고양이의 모습을 한 이름모를 괴물아.”
—-
“릴리스! 일어나 봐요. 빨리!!”
릴리스의 어깨를 붙잡아 앞뒤로 흔들자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으….어지러어….흔들지 마아….”
아니, 고양이라면서요. 고양이가 무슨 멀미를 느껴!
릴리스의 정신을 다잡을 방법을 생각하던 나는 한가지 결단을 내렸다.
“흐읍…!”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운 다음.
릴리스의 보드라운 배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리고 발사!
“푸루루루룹.”
“응니야악!”
“오, 효과 있네요.”
“뭐, 뭘 한거야?!”
“배방구요.”
“…뭐?”
“릴리스 배에다가 바람 분 건데요.”
릴리스가 경악스런 목소리로 외친다.
“그런 걸 대체 왜 하는 건데에!!”
“릴리스가 정신을 못 차리길래 이러면 차릴 줄 알았죠.”
효과는 확실했다.
“그건 일단 미뤄두고. 릴리스,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는 릴리스 곧이어.
“…드림랜드?! 우리가 왜 여기있어?”
“역시나. 그곳이 맞았네요.”
릴리스는 곧장 눈을 감더니 무언가에 집중했다.
“으으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릴리스.
얼마 걸리지 않아 눈을 뜬 릴리스, 그런데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 어째서 이 기운이…”
당황, 경악, 그리고 무엇보다….공포.
“왜 그래요?”
“……”
릴리스는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우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현재 잠을 자고 있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드림랜드는 꿈을 꿔서 오는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분명 실기평가를 하던 중 아니었나? 내가 언제 잠에 들었지?
“또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어. 드림랜드에 와서 연결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같은 꿈을 꾸고 있다가 드림랜드에 온 거야.”
“…같은 꿈을 꾸다니 그게 가능해요?”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들은 많아. 아직 남아있는 기운의 흔적을 따져봤을 때. 두 신의 기운이 느껴져. 하나는 우리를 같은 꿈으로 몰아넣은 신, 다른 하나는 그 꿈을 가로채서 우리를 드림랜드로던져버린 신.”
외신이 두 명이나 엮여있다는 말이다.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보자마자 미쳐버린다는 외신들이 둘이나 달라붙다니…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아, 하지만 이 둘이 힘을 합한 게 아니야. 우릴 드림랜드로 보낸 건 아마 다른 신의 독단적인 선택일 거라 생각해.”
“왜요?”
“느껴지는 신의 기운이 내가 아는 기운이야. 그리고 그 둘은 절대 협력하지 않아.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어.”
“그럼 우리를 왜 드림랜드로 오게 만든 거예요?”
릴리스는 내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이내 착잡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자는 원래 그런 존재야. 인간을 장난감 삼아 실컷 가지고 놀고는 싫증나면 부숴버리지. 간접적인 것까지 치면 아우터 갓 중에서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마 그 신일 거야.”
…그런 외신이 저희를 여기로 던져버렸다고요..?
이거… 망한 거 아닌가?
“…여기서 나갈 방법은 있어요?”
“있어.”
즉각적인 대답이 돌아왔지만 릴리스는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힘들어.”
“힘들어도 해야죠.”
“…위험할 텐데? 차라리 가만히 있다가 우리를 꿈꾸게 만든 신을 기다리는 방법이 더 안전해.”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가 아무도 안 오면요. 이미 그 신은 주도권을 뺏긴 거나 다름없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요?”
이에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릴리스는.
“…좋아. 우선 카다스로 가자.”
“카다스요?”
“드림랜드의 신들이 모여 사는 도시야. 한때 내가 있기도 했고. 그곳에 가면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도시라…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구나?
당장에라도 출발하려는 릴리스였지만, 나는 다급히 릴리스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왜?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에 저만 떨어진 건 아닐 거예요. 다른 학생들도 도와줘야-”
“아서, 드림랜드에서 가장 높은 사망사유가 바로 오지랖이야.”
“그 오지랖이 아니었으면 지금 저희가 이렇게 대화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
미안해요 릴리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넘어가 줄 수 없어요.
내 결연한 표정을 본 릴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래,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어. 좋아. 다른 인간들도 도와주자고. 단, 만약 네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탈출을 우선으로 움직일 거야.”
“충분해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릴리스.”
“이해 못했으니까 고마워하지 마.”
“그럼 이건 어때요?”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릴리스를 가슴으로 품어준다.
“저랑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릴리스.”
“…..그건 고마워해야지.”
내 품에 조막만한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감각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우선 학생들부터 찾아야겠네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내가 누군지 잊었어?”
“아! 릴리스는 드림랜드의 신이기도 했죠?”
“조금만 기다려 바로 찾아내줄 테니까.”
릴리스는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어….10m 근방에 한 사람.”
10m? 10미터?
고개를 돌리던 나는 누군가와 시선이 딱 맞아떨어졌다.
“……”
“……”
“……”
마주친 눈동자는 붉은 색. 두껍고 진한 눈썹이 그의 심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일렁이는 불꽃처럼 빨간 머리카락은 짧게 깎아 촛불을 떠올리게 한다.
저렇게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리가 없다.
“…안녕 루크.”
루크 블레이즈. 우리 학년 차석에 자리한 우등생이며, 동시에…
“우와!! 고양이가 말을 했어! 쩐다아!!!!”
…우리 학년 공인 열혈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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