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거인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나무가 얼마 없는 공터.
루크와 내가 머물렀던 곳처럼 열매 덩쿨이 무성한 곳이었다.
다른 점은 그 공터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피였다.
“죽어라 이 괴물아!”
“온다! 피해!”
이미 세 명의 학생이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었고, 남은 열 명의 학생들은 거인의 주먹질을 피하며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쿠워어어어어!!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거인은 단순히 커다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북슬북슬한 털 사이로 분홍색 피부가 드러나고 있었으며, 두터운 팔은 사람 머리정도는 가볍게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징그러운 것은 바로 거인의 얼굴이었는데. 거인은 마치 물고기처럼 눈이 머리의 측면에 나 있었고, 입은 이마부터 턱까지 세로로 쭉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그 입 안에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기다란 이빨이 다다닥 자라나 있었다.
-저건 ‘구그’ 야. 저 놈들은 햇빛을 두려워해서 드림랜드의 지하에서 살아. 주식은 인육이고.
지금은 햇볕이 쨍쨍한 대낮이었다. 비록 울창한 숲이 가림막이 되어준다고 한들 여전히 밝은 환경이다.
-지하에서 산다면서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마 배 고파서 그럴 거야. 배 고픈 와중에 머리 위로 먹잇감이 지나간 거지.
언뜻 보기에도 5m는 넘어보이는 저 덩치로 인간을 먹는다고? 비효율의 극치다.
몸이 어지간히 튼튼한 것인지 학생들의 마법세례에도 꿈쩍을 안 한다. 하지만…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불길과 함께 공터에 뛰어드는 루크.
“모두 내게서 떨어져라!”
혼자서 구그에게 맞선다고 말하는 루크.
보통이라면 미친 짓이라며 단박에 거절할 말이었으나.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이 루크라는 것 자체에 신빙성이 생겼다.
다급히 거리를 벌리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루크는 구그와 마주했다.
“감히 내 친우들을 건들여? 너는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 그것이 바로….”
-화르륵!
루크의 전신에서 불꽃이 터져나왔다.
시뻘건 불길을 감싼 루크가 포효한다.
“의리니까아아아!!!!”
루크의 몸에서 흘러나온 불꽃은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가더니 이내 구그와 비슷한 크기의 불덩어리가 되었다.
‘…저게 학생이 쓴 마법이라고?’
이미 혼자서 작은 마을정도는 불태울 화력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
루크의 기합과 함께 불덩어리가 구그를 향해 쏘아졌고, 구그 또한.
“쿠워어어어어어어!!!”
기합과 함께 불덩어리를 맨손으로 막아섰다.
“우오오오오오오!!!!”
“쿠워어어어어어!!!!”
두 괴물의 기싸움은 순식간에 결착이 났다.
“쿠워어어어어억!”
루크의 불덩어리가 구그의 손을 불태우며 지나가 몸통에 직격했다.
“!!!!!!!”
뭐라 표현할 길이 없는 괴성이 숲을 울렸고, 이내.
“쿠….쿠워……”
-쿵!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구그가 쓰러졌다.
불덩어리로 인해 털이 모조리 타버리고 빨갛게 익어버린 구그.
-…구그를 저렇게 사냥한 인간은 처음 봤어.
-…둘 중에 누구를 괴물로 봐야 할까요?
일단 인간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저거…. 괜찮은 거야?
“우오오오오오오!!!”
구그를 처치했슴에도 루크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한눈에 그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오버히트….”
블레이즈 가문의 가장 큰 단점은 두뇌가 아니다. 바로 발열이었다.
전장에 나타났다 하면 전략병기 취급을 받는 블레이즈 가문이지만, 그와 동시에 아군 입장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조금씩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번에 화력을 끌어올리게 되면 마법이 주체없이 날뛰게 되는 것이다.
피아식별은 고사하고 본인조차 통제가 잘 되지 않는 엄청난 열기.
“끄으읏!”
다행히도 선을 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루크의 통제에 불길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점점 줄어든 불꽃은 이내 피식하는 소리와 함께 한줌의 연기로 사라졌다.
“휴우~ 위험할 뻔했군. 다치지 않았나 아서?”
“나는 괜찮지. 그러는 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름대로 조절한 불이었으니까!”
…그게 조절한 거였다고?
-대단한 열기였어. 순간 크투가가 떠오를 정도로.
“루크! 그리고….. 아서?”
멀리 떨어졌던 학생들이 돌아왔다.
루크를 볼 때는 반짝이던 눈이 나를 보자 의문이 담겨졌다.
“너희들도 다친 곳은 없나?”
루크의 물음에 소심해 보이는 여학생이 대표로 나섰다.
“우, 우리는 괜찮지만….”
여학생의 시선을 따라 가보자 쓰러져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한 명은 상반신이 날아가 알아보기도 힘들었으며, 또 한 명은 배가 터져서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음? 저기 저 친구는 외상이 없다만? 무슨 일이지?”
“우리는 숲을 헤매다가 여기로 오게 됐어. 쟤는 저기 있는 열매를 주워먹고는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어.”
그러자 무리 사이에서 들려오는 작은 흐느낌.
“흐윽…그러니까 아무거나 주워먹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쟤가 피를 토하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저 거인이 튀어나왔어. 그리고 싸우던 도중에 두 명이 거인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했고.”
-피냄새 때문에 구그가 흥분한 모양이네. 운이 안 좋았어.
….운이라.
생각에 빠질려던 그때 릴리스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아서. 사방에서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어. 아마 불꽃원숭이의 마법을 본 것 같아.
나는 이를 곧장 루크에게 알렸다.
“음. 모두가 모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어떤 일이 있던간에 사람이 많으면 든든한 법이지!”
분명 그럴 테지만 나에게는 살짝 불리한 상황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겨주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4일만에 우리가 원래 세상으로 자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희망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탈출 순위로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거짓말을 내놓았고, 이 거짓말은 사람이 적을 때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이 상황은 시험이고 경쟁이니까.’
사람이 다수 모여버리면 거짓말이 제 쓸모를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분쟁만 일으키리라.
“루크. 잠시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음. 좋다!”
잠시 뒤 다른 학생들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무슨 일이지?”
“내 가설 기억나? 탈출을 하면 가산점을 얻을 수도 있다. 라는.”
“기억난다!”
“그거 다른 얘들한테는 숨기자.”
“어째서지?”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이기도 하며 그게 알려진다면 너도나도 빠르게 탈출하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될거야.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살아갈 확률도 낮아질거야.”
“……..”
멍한 표정을 짓는 루크.
“…이해 했어?”
잠시 침묵하던 루크는.
“좋아!”
“그럼-”
“전혀 못 알아먹었다!”
“……”
“하지만 요점은 알겠다. 어쨌든 간에 네 가설을 다른 친우들에게는 숨기자는 말이지?”
“그래.”
“좋다! 똑똑한 아서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다행히 빠르게 수긍하는 루크.
“좋아. 하지만 이대로 가설을 포기하기는 힘들어.”
탈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는 빠르게 카다스로 향해 학생들을 전부 탈출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내게 좋은 수가 있는데. 일단 들어볼래?”
—-
“어디 다녀온 거야 루크?”
“잠시 아서와 이야기를 하고 왔다!”
“…아서랑?”
나를 보는 눈초리가 탐탁지 않았다. 하긴, 무리의 학생들은 대부분 평소에 나를 무시하던 녀석들이다. 최근에는 릴리스의 힘을 보여준 이후 학생들의 괴롭힘이 없어졌지만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아직도 마력 0의 평민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우리는 여기에 캠프를 차리기로 했다!”
“…캠프?”
“그래. 캠프! 4일 동안 여기서 모두 함께 지내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최고로 안전한 방법일 거다!”
“하지만 여기는…”
학생들의 시선이 쓰러진 구그로 향했다.
이번에는 내가 말문을 열었다.
“오히려 여기가 가장 안전한 장소일 수도 있어. 저 거인이 설마 여러 명이 잠복해 있을 리는 없잖아?”
물론 릴리스를 통해 더 이상의 구그는 없다는 확답을 들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저 열매를 독초와 식용으로 구분할 방법을 알고 있어. 독초를 전부 제외하면 조금이나마 식량에 보탬이 될 거야.”
미심쩍은 눈으로 내 말을 듣던 학생들은 저들끼리 뭐라 수군거리더니 이내.
“좋아. 루크가 지켜준다면 우리도 안심이지.”
“음! 아서의 말대로라면 조금 있으면 다른 친구들도 온다고 했다! 그들에게도 권유해봐야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역시나 릴리스의 말이 맞았다.
다른 학생들이 조심스레 공터로 들어섰고 구그와 학생들의 시체를 보며 놀랐다.
학생들의 시신은 아무도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저 시신은 어떻게 하지?”
-걱정마. 저 시신은 곧 있으면 사라질 테니까. 꿈 속의 자아가 사망하며 그 시체는 없어져버리거든.
그리고 보니 릴리스에게 한가지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릴리스. 혹시 드림랜드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죠? 현실에서도 죽는 건가요?
-아니, 여기서 죽어도 현실에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꿈의 죽음(Dream Death)을 경험하면 꿈의 자아가 사라져. 꿈의 자아가 사라진 존재는 다시는 드림랜드에 들어올 수 없고, 다른 꿈에서 꾼 기억도 전부 사라져버려.
-…정말로 꿈이라는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거군요.
-정확해.
다행히도 여기서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과 이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꿈의 기억을 잊어버린다고?’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여기서 죽으면 안 되었다. 꿈의 기억이 사라진다면 나는 릴리스와의 첫만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절대로 안 되지.’
“아서. 학생들이 많이 모였다. 전부 캠프에서 사는 데에 동의했다. 역시 좋은 계획이군!”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지금. 캠프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
“그런데 아서. 이 균열은 매우 위험한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전부 모여 있어도 밤에는 위험할 수도 있다!”
“걱정마. 그것도 전부 계획이 있으니까.”
“오오! 역시 아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래. 우리 모두의 안전을 대비할만한 계획.
그 방법은 릴리스가 알려줬었다.
내 시선이 익혀진 구그의 사체로 향했다.
“루크. 혹시 내가 저 거인의 사체를 사용해도 될까?”
“음? 상관은 없다만 어디에 쓸려는 거지?”
“협상.”
“….음?”
나는 아주 강력한 경비원을 고용할 것이다.
그리고 저 구그 사체는 그들과의 협상에 사용될 것이다.
‘밤이 기다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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