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9



절규를 하는 레티를 다음에 다시 찾아가보겠다며 달래준 나는 간신히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숙사 방문 앞에 서서 잠시 고민해본다.

‘이거 릴리스한테 보여줘도 되는 건가?’

현재 의심되기로는 이 책은 무려 릴리스와 같은 외신들을 상대로 한 야설이다.

‘….뭔가…뭔가 보여주기 좀 껄끄러운데?’

가족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들킨다는 것이 얼마나 쪽팔린 지는 가족이 없는 나라도 알았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레티만 해도 예전에 야설을 보다가 치우는 것을 깜빡해서 남동생에게 들킨 적이 있다고 한다.

‘몇 주동안 말도 안 하고 얼굴도 똑바로 못 봤다고 했지…’

비록 내 취향은 아니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져온 책이더라도 이런 것을 들킨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음, 숨기자.”

떠오르는 것은 나를 놀릴 때의 릴리스.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떠오르자 마음이 굳혀졌다.

다행히도 숨기는 장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기본으로 받게 되는 교복은 무려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주머니가 있다.

비록 그리 많은 양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아공간 마법의 가치를 생각하면 엄청난 복지인 것이다.

거기에 도난방지 마법도 걸려 있어서 교복의 주인이 아니면 함부로 열어볼 수도 없다.

물론 외신에게 통하냐는……나도 잘 모르겠지만.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현관으로 나와서 나를 향해 팔을 벌리는 릴리스.

머뭇거리며 다가가자 웃으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딱히 수고까지는…”

부끄러워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속마음은 방에 들어온 직후부터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릴리스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뭐 할까? 씻을래? 밥 먹을래? 아니면…..”

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릴리스의 시선이 내 입술을 향했고, 혀는 붉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머, 먼저 씻겠습니다!”

“어머, 왜 그리 당황하는 걸까?”

“으윽…”

릴리스의 품에서 벗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

“내가 씻겨줄까?”

“호, 혼자서도 씻을 수 있어요!”

깔깔 거리며 웃는 릴리스를 뒤로 하며 다급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계속 놀리기만 하고…”

씻기 위해 옷을 벗어 던지는데 무언가가 걸렸다.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한다.

“…..미치겠네. 진짜.”

—-

샤워를 마치고 마법 건조기로 순식간에 몸을 말린 뒤 화장실을 나서려는데.

“왁! 깜짝이야!”

문 바로 앞에 릴리스가 있었다.

“화장실 좀 써도 될까?”

“외신도 ㄸ….어…생리현상이 있나요?”

“아니? 그냥 들어가 볼려는 건데?”

“그…지금은 습기 때문에 들어가면 안-”

-위이이이잉

그 순간 화장실 내부의 환기 마법진이 작동하며 저절로 습기를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타이밍 최악이네.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될까?”

“…..아! 생각해보니까 머리를 안 감았네요. 다시 들어갈-”

다급히 몸을 돌리는 나를 릴리스가 막아선다.

“왜, 내가 들어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니?”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네.”

릴리스가 내가 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화장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흐읍…..파하아…..”

그러곤 나를 돌아보며 말하길.

“어머, 환기 마법이 잘 안되는 걸까나? 조금 비린내가 나지 않니?”

…망했다.

“후훗, 이게 과연 무슨 냄새일까나~?”

나를 보며 악마 같이 웃는 릴리스는 분명 일부러 모른 척을 하는 것이다.

“아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니?”

“……네?”

“가능하면 변기에 버리지 말고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려주면 안 될까?”

“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밥을 그냥 물에 흘려서 버려버리는 건데. 그럼 너무 아쉽잖아.”

“밥이라니.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릴리스.

“아무튼 내 말대로 해줄 수 있을까?”

“……네.”

미친 듯이 부끄러웠지만 릴리스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 아서. 역시 착하네~ 오구오구.”

내 머리를 쓰다듬는 릴리스의 손을 반사적으로 쳐내려다 그만두었다.

부끄럽긴 하지만……뭐, 싫은 건 아니니까.

문득 시계를 보자 저녁시간까지 시간이 빈다는 것을 알았다.

릴리스 또한 내 시선을 따라가 시간을 확인하곤 내게 물었다.

“시간이 남네? 그럼 그동안 뭐 하고 있을까?”

“……어…그러게요?”

보통의 평범한 가족들은 이 시간에 뭘 하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라 답이 궁했다.

“으음….”

릴리스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릴리스도 딱히 제대로 된 가족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랑 같은 심정일 것이다.

서로 고민이 길어지며 방을 잠식한 침묵.

그 텁텁한 침묵을 깨버린 것은 릴리스의 갑작스러운 손뼉이었다.

-짝!

“우리 자기소개 할까?”

“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만난 지 이제야 2일차잖아? 서로 모르는 것도 많고, 특히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때?”

“오오! 좋은데요?”

상상치도 못했지만, 릴리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규칙부터 정하자.”

릴리스의 손길에 따라 허공에 글씨가 써졌다.

1. 한 번에 한 질문씩 주고 받는다.

2. 애매모호한 답변 금지. 확실한 답만 하기.

3. 거짓말 금지.

4. 너무 답하기 싫은 질문이라면,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에 한하여 소원 들어주기.

“어때?”

“4번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좋네요.”

만약 내가 릴리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소원을 말할지가 두렵고…..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었다.

‘하하, 외신을 상대로 스릴을 느끼고 있다니. 나도 간이 좀 커진 걸까?’

“누구 먼저 할까?”

“릴리스가 먼저 하세요.”

“좋아. 그렇다면….첫키스는 언제 인가요!”

…..뭐요?

“네? 왜 그런 질문을…”

“에헤이~ 잡설은 그만! 대답해 줘.”

대답하기 정말 부끄러운 질문이었지만 벌써부터 소원을 줄 수는 없었다.

“….어제. 릴리스랑 한 게 처음입니다.”

릴리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머나~ 무슨 소리람? 그건 식사일 뿐이었다니까?”

저렇게 말하면서 엄청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제 차례네요. 흠….뭘 물어보지?”

이것저것 떠오르는 게 많았지만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릴리스 혹시 나이가 몇-”

-화르륵!

그 순간 릴리스의 안광이 불타오르면서 방 안이 검은 불길에 삼켜졌다.

“히익!”

나를 향해서 넘실거리던 불길은 나타났을 때와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삐걱거리는 목을 움직여 시선을 돌리자 나를 째려보고 있는 릴리스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소원.”

“네?”

“소원 들어준다고.”

말투가 날카로웠다.

아…이거 역린이었구나.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모양이다.

볼을 살짝 부풀리며 토라진 릴리스가 너무도 귀엽긴 했지만 이대로면 자기소개가 끝날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풀기 위해선….

“안아줘요.”

곧장 릴리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응? 뭐라- 꺅!”

얼떨결에 나를 받아낸 릴리스는 처음에는 굳어있었지만 이내 품으로 파고드는 내 움직임에 맞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릴리스.”

“…나도 놀래켜서 미안해. 뜨겁진 않았어?”

“네…..음…조금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도 릴리스가 화를 푼 모양이다.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여기서 멈출 수는-

“아서 너 여자친구 있니?”

“……넹?”

갑자기 치고 들어온 질문에 멍하기도 잠시.

“어, 없어요!”

“어머? 왜 얼굴은 왜 붉혀? 설마 진짜 있는 거야?”

“없다니까요?! 이건 그냥 놀라서….”

“흐응~ 그래, 알았어.”

전혀 믿는 말투가 아니었다.

아니, 진짜 없는데….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겠다.

이 억울한 마음에 원래 준비 되어 있던 질문을 갈아치운다.

“그러는 릴리스는 사귀는 사람 있어요?”

“지금은 없는데 앞으로를 약속한 사람은 있어.”

“네, 네…….네에?!”

앞으로를 약속했다니.

그거 약혼..? 같은 거 아냐?

심장이 덜컥 내려 앉으며 거친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누, 누구…?”

“비밀~”

“…….예?”

릴리스는 밥을 먹던 높은 식탁에 턱을 괴며 나를 바라보았다.

“회색머리에 회색 눈을 가진, 나랑 아주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랑 평생 같이 살 예정이야.”

회색 머리에 회색 눈.

이거 완전……

‘저요?’

내려 앉았던 심장이 이번에는 미친듯이 튀어올라 목젖을 때리는 것 같았다.

“….그…”

“어머, 난 누구라고 말 안했는데?”

“….네, 알겠습니다.”

뭐라 반박하기도 힘들었다.

뭐…단어만 놓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내 차례네. 지금 말고 과거에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경험은?”

거참 말하기 부끄러운 질문이다.

릴리스와의 대화로 이미 꺾일 대로 꺾인 자존심이 다시 반토막 나는 답변을 한다.

“….없습니다.”

“어머, 진짜? 그거…그거지? 인간들이 말하던…..아! 모태솔로!”

‘모태솔로’ 그 짧은 한 단어가 내 가슴을 비수처럼 꿰뚫었다.

“…네에..맞습니다. 모태솔로입니다…”

“하긴 그랬으니까 첫키스였겠지? 나도 참. 쓸모없는 질문을 했네.”

그 쓸모없는 질문에 나만 상처를 입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조금더 실용적인 질문을 하기로 했다.

정말로 궁금한 게 많은데 시간은 없으니까.

솔직히 나이도 살짝은 장난식으로 물어본 거다.

그 다음으로 궁금한 건…

“릴리스는 어떤 신이예요?”

“흠…내가 어떤 신이냐….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

릴리스는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음. 우선 꿈의 신 중 하나겠네.”

“꿈? 아, 저희가 만났던 곳이 꿈이었죠?”

“정확히는 드림랜드라고 불리는 곳이지. 거긴 평범한 꿈이 아니야. 꿈의 탈을 쓴 이계에 가까워.”

…그냥 꿈이 아니었단 말야?

“거기 들어갈 때 계단으로 내려왔지? 인간이 들어가기 가장 편한 방법이야.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서 문제지만.”

“그럼-”

벌려지는 내 입을 릴리스의 손가락이 막아섰다.

“질문은 한번에 하나씩. 그게 규칙이었잖아? 이어서 말하자면 밤의 신이기도 해.”

“아, 꿈의 신이랑 이어지네요?”

“맞아.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릴리스가 양손을 펼쳐보였다.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손을 보고 있자.

한 손은 검지만 들어올리고 한 손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우왁! 그만 그만!! 잘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그만하세요!!”

“후훗, 요런 신이기도 해. 답이 됐을까?”

“….네.”

뜨거워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하자 릴리스가 다음 질문을 이어서 했다.

“이상형이 뭐야?”

이번에도 대답하기 뭐한 질문이다.

솔직히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 좀 되었다.

“음….우선 가정적이고,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요.”

“외형적인 부분도 말해야지. 거기서 끝나면 반쪽짜리 대답이야.”

외적인 부분이라.

일단 떠오르는 것을 바로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머리카락은 길면 좋겠고, 키는 나보다 좀 크거나 같고, 입술이 예쁘고…”

“몸매는?”

“….몸매는 좋으면 좋….어…”

잠깐, 이거 종합해보면 완전….

슬그머니 눈을 고개를 들어보니 릴리스와 눈이 맞았다.

“후훗, 왜? 무슨 문제 있어?”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릴리스의 모습에 괜스레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케이~ 이정도면 인정해줄게. 이제 슬슬 밥시간이네. 마지막으로 질문해.”

마지막이라니 신중하게 질문을 골랐다.

개인적으로 외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떠올랐던 신이 있었다.

혹시, 릴리스도 알고 있지 않을까?

“릴리스.”

“응?”

“혹시 노덴스라고 아세….요…?”

노덴스. 그 이름이 발음되자마자 릴리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에 말 끝머리에 담긴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완전히 붉어진 눈을 빛내는 릴리스가 내게 물었다.

“…아서. 지금 뭐라고 했니?”

아,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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