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5
1.
트리니티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름대로 해결하고 온 시점, 밀레니엄으로 돌아오니 나를 반겨준건 현재에 대한 고민이었다.
선생이 나의 정체를 알아챘다는 중대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위기’라 판단하며 표정을 굳혔지만 이내 표정이 풀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뭐임?’
아무런 직감도 들지 않았기에.
초감각.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울려퍼지던 머릿속의 경종이 지금은 한없이 잔잔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무능력자가 되었나, 싶었을 정도로.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먹었다.
정확히는 사고를 전환시켰다는 말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지만 초감각이 작동을 멈춘게 아니다.
초감각이 발동할 일이 아니기에 조용한 것이지.
이 말은 즉…….
“큰 문제는 아니네요.”
“그런가요?”
내가 덤덤히 말하자 히마리도 상쾌히 답한다.
마치 방금까지 덜덜 떨던 모습이 연기였다는 듯.
의아한 시선을 히마리에게 던져보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팔을 활짝 펼쳤다.
그리곤 즐거워 죽겠다는 목소리로 히마리가 말했다.
“깜짝 놀랐나요?”
“…….”
“후후.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의 그 직감으로 확신을 얻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아하.”
단순히 장난기가 발동했을 뿐인가. 그게 아니면 정말 의심하는 부분이 있던가.
…어쩌면 평소처럼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였을지도.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히마리를 안아들었다.
히마리가 익숙한 듯 안기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트리니티까지 가서 알아내고자 했던 것들은 전부 해결하셨나요?”
“……대충은요.”
“후후. 잘됐네요. 걱정했답니다?”
“죄송합니다.”
히마리가 보아도 이상하긴 했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니었다고 보았으니.
다만, 눈치 빠른 히마리답게 내가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고 순순히 보내줬겠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방법이랍시고 내뱉었을 때도 마지못해 지는 시늉마저 해줬으니 말이다.
히마리도, 에이미도. 다 알면서 모른 체 해준 셈.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 많은 동아리 부원들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말하자면 길지만… 아주 멀고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죠. 그보다 선배, 제가 예언자와 만나고 왔다는걸 의심하지 않으시네요?”
“그야 히이로도 예언자 비스무리한 뭔가잖아요? 나름 방법이 있겠거니 싶었죠.”
“…….”
히마리와 에이미에겐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 공유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지 않을까?
나를 진심으로 만능 해결사라고 보는걸까.
모르겠다.
지금은 단순히 나에 대한 신뢰가 깊다고만 해두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으니.
…어찌됐든,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이게 아니지.
부실에 딸려있는 휴게실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위치해있는 침상에 히마리를 앉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선배.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세요.”
“좋아요.”
지금은, 이 세상의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
선생. 샬레의 주인. 총학생회장의 후임자.
출범했을 시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소문과 속설들을 탄생시키며 그야말로 키보토스의 중심에 선 존재.
키보토스에서 선생이란 존재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선생을 극심하게 추종하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불가해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선생에게 이러한 명칭입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보여주는 면모가 참으로 다양했기에.
때론, 어른이면서 어른답지 않은 면모를 보이고.
어떨 때에는 진중하고, 어떨 때에는 경박하고 유치한 인상을 드러내며.
중요한 순간에는 올바른 신념을 바로세우고 놀라운 기세로 사건을 순식간에 해결해버리는.
“당신과 조금 비슷하지 않나요?”
“……예?”
히마리의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당황하며 반문했다.
진심으로 당황한 나머지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잖아요. 선생이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당신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두 사람 모두 정의나 선의를 중시한다는 점이나. 또, 불의나 악의를 가만두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하죠.”
“…….”
그 정돈가.
나는 잘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내 반응을 지켜보던 히마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게 보였다. 익숙한 표정이다. 나를 놀릴 때 짓는 소악마스러운 표정.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최근 사람들이 선생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이 뭔지 아시나요?”
“……듣고 싶지 않은데요.”
“어덜트 실크. 두 번째 달. 언럭키 실크.”
“아 제발.”
“후후후. 멋있지 않나요?”
뭐가 멋져. 거지같은데.
나는 표정을 팍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이 외에도 있는데 들려드릴까요?”
“듣고 싶지 않아요!”
“음. 어덜트 실크 말이에요. 뭔가 굉장히 야하게 들리지 않나요? 아! 그러고보니 어디선가는 실크를 대상으로 한 성인 만화가 그려지고 있다는 소문도-”
“제발 좀……!”
텁-!
더 이상 듣고있기 힘들어서 히마리의 입을 막았다.
시발. 내가 도대체 뭔 말을 들은거지?
“선배. 지금까지 나온 말들, 전부 거짓말이죠? 그렇죠? 다 지어낸 말들이죠?”
“…….”
“선배……?”
“…….”
히마리는 똘망똘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치의 더러움도 담기지 않은 히마리의 눈동자는 마치 자신은 지금껏 단 한번의 거짓도 입에 담은 적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아니야.
그냥 내가 입을 막고있으니 그런거겠지.
……그런거여야만 해.
나는 히마리의 입에 올려둔 손을 살며시 치우면서 말했다.
“하아.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엔지니어부요.”
“이런 씹.”
이 양반은 또 왜 거기에 가있는건데.
…
…
…
히마리에게 전해듣기로 선생이 밀레니엄에 찾아온건 이틀 전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은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듣고도 밀레니엄에서 떠나지 않았는가.
또한, 어째서 게임개발부가 아닌 엔지니어부에 있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을 품은 채, 엔지니어부에 도착했다.
부실에 가까이가니 여전히 소란스럽게 기계음이 울려퍼진다. 당분간 찾아가지 못했던 탓인지 더욱 익숙하게 들려오는 기계음이었다.
우선 부실의 문을 열고 우타하부터 찾았다.
선생의 성격상, 그리고 위치상 가장 높은 사람이 그를 맞이했으리라는 일종의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고 적중하였다.
다만 문제는…….
“…….”
내가 찾던 우타하가 커다란 기계 아래에 상반신을 집어넣은 채 무언가를 뚝딱거리고 있었으며, 그런 우타하의 뒷모습을 미려한 외모의 남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음.
…아무래도 단순히 우타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지켜보는건 아닌거 같은데?
선생의 뒤에서 지켜보니 우타하의 치마가 굉장히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다가 치마 안쪽이 보이겠다 싶을 정도로.
‘하긴, 원래 제정신은 아닌 양반이었지.’
원작에서도 선생은 일각에서 굉장히 경박한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었다.
저 모습 또한 선생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마 가만히 둘 수 없었기에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어? 아, 히이로 왔구나?”
“별 말은 안하겠지만, 거 다른 사람 있는 곳에선 자중하시는게?”
“아하하. 보고 있었어? 이런…….”
선생이 부끄럽다는 듯 쓰게 웃어넘긴다.
이런 추태가 들켰음에도 수치심을 느끼기보단 제자한테 꼴불견을 보였다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양.
…여러모로 대단한 양반이었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랬지. 타이밍이 별로 안좋았지만 말이야.”
“음. 죄송합니다. 트리니티에 갈 일이 있어서.”
“…….”
“…….”
내 말에 순식간에 침묵이 감돈다.
남들이 듣는다면 평범한 대화일지 몰라도 선생이라면 지금 내 말 뜻을 쉬이 파악하였을 것이다.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구나?”
“뭐, 선생님한테는 숨긴다고 숨겨지는 일도 아니잖습니까. 이미 아비도스에서 대충 눈치채지 않으셨나요? 확신은 아니시겠지만.”
“하하…. 히이로는 관찰력이 굉장히 뛰어나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비도스에서 내가 실크로 활동하고 있을 시점.
선생이 내게 다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도 선생은 어딘가 미묘한 반응을 보였었지.
아마 그 순간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으리라.
다만 그때는 확신이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니? 주변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내 태연한 반응에 되려 당황한 모습으로 묻는 선생.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선생의 곁에 마주서곤 우타하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선생과 긴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았고, 그리 친하지도 않았지만 곁에 서자 묘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음을 깨달은 탓일까,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뭐, 확실한건 선생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이미 주변에 인기척이나 도청 장치가 없다는건 확인했습니다. 우타하 선배는 오래 전부터 제 동료였으니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요.”
“…….”
“지금은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내 발언에 선생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철저하구나. 대단하네.”
“철저하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테니까요.”
내 충격적인 발언에 순간 선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학생의 입에서 태연하게 ‘죽는다’는 말이 나와서 놀란 것일까.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그만큼 내가 하는 히어로 활동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선생도 그 사실을 이해하는지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
“……힘들지는 않고?”
“이젠 습관처럼 되버린 일이라 힘들지는 않네요. 물론, 피로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젠 제 의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니까요.”
“의무, 말이니?”
“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까요. 본래 저와 제 주변을 지키기 위해 쓰려던 힘을, 더 큰 범위로 넓혀서 사용하고자 이 일을 택했습니다. 저에겐 그럴만한 힘이 있고, 지혜가 있으니까요.”
히어로의 의무. 강자의 의무. 빙의자의 의무.
여러 가지 이유로 포장하여 만든 일종의 명분.
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념이라고 보아야겠지.
나 자신이 결정한 방향성이니까.
어쩌면, 선생의 시선에는 이런 내 행동이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치기 어린 행위로 보일지도 모르지.
‘의무’라는 단어는 어린 학생이 입에 담기엔 너무나도 무겁고도 어려운 단어였으니까.
“고생했구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식.
키보토스의 상식상 의무와 책임은 학생에게도 뒤따르는 단어인 법이었다.
그렇기에 선생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무언의 위로를 건냈을 뿐.
역시 선생은 선생이었다.
3.
아쉽게도 우타하와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무슨 의뢰라도 받았는지 당분간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는 말을 했기에.
어떤건지 묻고 싶었지만 우타하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녀는 어딘가로 바쁘게 뛰어갔기에 결국 나는 선생과 함께 부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직 청쾌한 하늘이 빛나는 오전. 곁에서 걷던 선생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게임개발부’라는 동아리도 찾아가야 하는데.”
“……게임개발부? 그곳은 왜요?”
“그곳에서 편지를 보내왔거든. 폐부를 막아달라는.”
“…….”
아니, 타이밍이 미쳤네.
그러고보니 적당한 시기이긴 하네.
이제 막 3월 말이었으니.
나는 당황하면서도 웃긴 상황에 피식 웃으며 선생을 게임개발부가 있는 건물로 안내했다.
그렇게 게임개발부가 있는 건물의 정문으로 향하려던 그 순간.
후욱─!
순간,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려퍼졌다.
기척이 느껴지는 장소는 상공.
순간, 그곳으로 고개를 치켜드니 보이는 것은…….
컴퓨터 본체를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게임기.
마치 누군가가 날려보낸 듯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그것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플레이 스테이션? 아니, 이곳에서는 플라이 스테이션이었던가?’
저게 왜 갑자기 이쪽으로 떨어지는-
“미친!”
“어, 어. 히이로?”
“빨리 이쪽으로 나와요!”
순간적으로 떨어질 장소가 선생의 머리 위라는 사실을 직감한 나는 선생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를 옆으로 치움과 동시에, 발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툭-
한 손으로 떨어지던 플라이 스테이션을 잡고, 방금 날아온 곳으로 플라이 스테이션을 던져버렸다.
남들 모르게 ‘경’을 실어서 날렸으니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와장창! 쿠당탕! 꺄아아아악!
“…….”
“…….”
음. 아무래도 사소한 실수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내 잘못 아니지 않음?
“설마, 저 아이들이 게임개발부니?”
“…네.”
순간 선생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길 걷다가 게임기에 맞아죽을 뻔한 경험은 또 처음이네. 하하…….”
솔직히 이때 죽었으면 다윈상 후보에 올랐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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