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5
1.
츠카츠키 리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학생회장.
‘빅시스터’라는 이명으로도 불리우는 그녀는 밀레니엄이 주 무대인 메인스토리 Vol.2의 2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메인스토리 Vol.2는 주로 밀레니엄의 동아리 중 하나인 ‘게임개발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 사고들을 다룬다.
메인스토리 Vol.2의 사건들 대부분이 작중에서 ‘텐도 아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폐허에서 주운 인간 소녀 형태의 안드로이드 ‘AL-1S’와 관련된 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2장에서 등장한 리오 역시 ‘아리스’와 관련된 일로 메인스토리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선역이 아닌 ‘악역’으로써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 행동이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비호감과 분노를 일으킬 정도의 일이었다는 점.
리오의 행동이 너무나도 비정했다.
너무나도 지독했고, 너무나도 냉혹했기에.
메인스토리 Vol.2의 주제인 ‘우정’이라는 부분을, 리오는 지금껏 쌓아온 주인공들의 모든 유대를 짓밟는 듯한 행위를 하였기에.
플레이어들은 리오에게 분노했고, 그녀를 질타했다.
다만, 나는 생각했다.
리오는 악역이긴 했으나, 과연 ‘악인’이었는가.
잠시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보았다.
리오는 언제나 이성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과학과 계산, 그리고 증명의 집합처인 밀레니엄의 학생회장답게 그녀는 언제나 모든걸 계산하였다.
이 세계의 운명, 미래마저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 리오는 아리스의 위험성을 깨달았고, 그녀를 사전에 배제하여 위험을 지우고자 했다.
무엇을 위해? 키보토스를 지키기 위해.
선한 목적을 위해 위악(僞惡)을 행한다. 그 행위로 인해 진정한 목적이 이뤄질 것이기에.
그것이 리오의 성향이었고, 행동 패턴이었다.
이렇듯, 리오는 단순히 이성적인 것을 넘어 ‘초이성적’이라고 표현할만한 성향을 지녔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미쳤다’고 표현할 결론에 도달할 정도로.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필요와 목적에 부합한다면 자신의 동료마저 배반하고 일을 진행시킨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했다면 불법이라도 서슴치않게 행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누군가의 목숨을 끊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곧장 실행시킨다.
이해와 합리.
그리고 계산적인 면모.
본인의 사유 끝에 한 번 결론을 정하면, 절대로 변경하지 않는 독선적인 태도.
중간에 그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의지.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회장인 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저런 것이었다.
훗날에는 패배한 이후, 이성적인 면모가 다소 줄어들고 ‘평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리오는 폭군 상태였으니까.
그렇기에 의문인 것이다.
어째서 이 시점에 리오는 나를 찾는가.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녀가 나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째서 노아는 굳이 날 찾아와 경고했는가.
이 물음에 히마리가 답했다.
“흥. 그 비겁한 여자가 공개적으로 일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건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이죠.”
우리는 리오가 나를 찾기 시작했음을 세미나의 서기인 노아가 다가와 이야기해준 덕에 알았다.
히마리는 그러한 과정이야말로 리오가 지금 나를 찾는 이유가 ‘떳떳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리오와 다양한 일을 진행했지만 성격도, 가치관도, 신념도 상극인 두 사람답게 곧장 험담을 내뱉었다. 리오가 맘에 안드는지 휠체어 손걸이를 툭툭 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마찬가지로, 긴 시간을 히마리와 함께 한 에이미 역시도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는 모습. 옷을 벗은 채, 에어컨 앞에 누워서 멍하니 우리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잠시 화이트보드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유가 뭐지? 예언으로 뭔가를 본 것인가? 그게 아니면 원래 생각하고 있던 일인가? 히어로 활동을 하던 중에 꼬리라도 밟혔나? 아니면… 단순히 노아를 시켜서 나를 떠보았던 것일까.’
리오가 나를 추적하고 있는 이유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아서.
지금껏 해온 일들이 많은 만큼, 리오가 어떤 방식으로도 나의 존재를 인지하게 될 것임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리오라는 인물이 나를 추적하는 이유를 추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내가 아무리 빙의자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하면 좋을거 같나요?”
이마를 문지르며 히마리에게 물었다.
그녀는 손걸이를 툭툭 내려치다 내 질문에 고개를 들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냥 무시하세요.”
“네?”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당황하며 히마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덤덤히 설명을 이어갔다.
“정말 무시해도 돼요. 어차피 히이로의 정보는 제가 알아서 차단하고 있기도 하고, 꾸준히 정보 교란을 일으켜서 추적 행위 자체를 봉쇄하고 있어요. 베리타스에게 도움도 받기도 했고요. 그쵸, 에이미?”
“으응… 말 시키지마. 더워.”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물리적인 형태로 히이로에게 위협을 가한다면 당신이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 일이고, 정보적인 형태로 위협을 가한다면… 제가 부숴버리면 되는 일이니까요.”
“…….”
와우.
나는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어?
나는 얼떨떨한 기색으로 히마리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 눈빛에 부끄러워졌는지 살짝 뺨을 붉히던 히마리가 크흠, 하며 말을 이었다.
“저의 역할은 히이로를 보조하는 것이니까요. 저같은 천재 미소녀 해커에게 도움받는건 저~엉말 귀한 일이지만 히이로에게만 특.별.히 신경써주는 거랍니다?”
“……고마워요, 선배. 신경써주셔서.”
“후후. 별 말씀을요. 그것보다 저는 히이로가 아비도스에서 이룬 일들과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들려주시겠어요?”
“네. 얼마든지요.”
우리는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주로 내가 이야기를 하고, 바닥에 드러누운 에이미와 내 무릎에 앉힌 히마리가 경청하는 형태였지만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만큼 더더욱.
2.
다음 날, 아침.
나는 또 다른 동료를 만나기 위해 엔지니어부에 방문했다.
동아리 건물 안에서는 여전히 뚱땅뚱땅 고철이 부딪히고, 갈리고, 긁히는 듯한 소음이 가득했다.
현대판 대장장이들의 작업 소리.
소란스러웠으나, 듣고 있으면 묘하게 흥미가 돋는 소리들이었다. 나는 건물 내부로 들어서며 소음이 울려퍼지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더욱 커지는 소음들이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내부를 구경했다.
그렇게 몇 분간 구경을 하고 있을 즈음.
“히이로~!”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히비키가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며 다가가자, 히비키는 많이 반가웠는지 와락 나를 껴안았다.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히비키에게 물었다.
“잘 지냈어요, 히비키?”
“…응. 너 없어서 많이 외로웠지만, 괜찮았어.”
“하하. 우타하 선배랑 코토리도 안에 있나요?”
“상담실에. 다같이 너 기다리고 있어.”
그런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우타하와 코토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자연스레 내 전용 상담실이 되어버린 3번 상담실로 다가가니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히이로! 돌아왔구나!”
코토리는 어디갔는지 보이지않고 홀로 앉아있는 우타하가 보였다.
나는 여전히 내게 안겨있는 히비키를 내려놓으며 우타하에게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우타하.”
“하하. 그러게. 몇 주 정도 지난거 같은데 되게 오랜만인거 같아. 거의 매일매일 봐서 그런가?”
“그럴지도요. 그보다 코토리는 어디에 있어요?”
“아. 코토리는 갑자기 의뢰인이 불러서 잠시 나갔어. 아마 이따가 들어오지 않을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아아. 이 익숙하고도 푹신한 감각. 오랜만이구나.
잠시 오랜만에 느끼는 소파의 푹신함에 눈을 감고있으니 우타하의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장비야?”
“예?”
“우리가 널 한두번 보니? 딱 봐도 뭔가 생각해놓은거 있어서 가져왔을거 아니야. 그치?”
“……그냥 인사하러 왔다고 한다면요?”
“뭔 인사야. 어차피 이제 매일매일 들락날락 거릴텐데. 대충 무사한거 봤으면 그게 인사지. 됐으니까 빨리 꺼내봐. 아 빨리빨리.”
“…….”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품 속에서 미리 적어놓은 장비의 구상안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니… 나에 대해서 왜 이렇게 잘 알지……?”
“푸흣.”
“풉.”
그런 내 반응이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두 사람.
머쓱해진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어느새 구상안을 가져간 두 사람은 그것을 빠르게 읽어내리더니 금세 결론을 내렸다.
“새 장비 제작이 아니라 수정이구나? 좋아. 가지고 있던 장비들 싹 다 업그레이드 시킬 생각이야?”
“네. 새 장비는 아직 생각해놓은건 딱히 없어서…….”
“좋아. 안그래도 나도 떠오르는게 있네. 바로 시작하자. 당분간 바빠지겠는데?”
“바, 바로 말입니까?”
아니, 간단히 서로 근황 묻고 이런거 안해?
당황하며 우타하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이런건 말 나올 때 바로바로 해야지. 안 그래도 요즘 너 없어서 작업이 재미없었는데 잘 됐다.”
“…….”
“하하. 바로 시작하자고! 우린 갈게!”
“응. 나중에 또 봐, 히이로……!”
묘하게 불이 붙은 두 사람이 작업실로 달려간다.
나는 상담실에 홀로 남아 멍하니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공돌이들…….”
당분간 얼마나 재미없었으면 대화도 안나누냐고.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엔지니어부를 빠져나왔다.
다음 목표는 베리타스.
이번에는 제대로 얘기 나눌 수 있겠지?
…
…
…
“안돼. 우리 바빠. 나중에 와.”
“엑. 무슨-”
“나중에 시간될 때 연락 보낼게.”
쿵-
빠꾸먹었다.
3.
치히로에게 입구컷을 당한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초현상특무부 부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밀레니엄 데이터센터를 지나 밀레니엄 타워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던 그 순간.
띠링-!
귓가에 울려퍼지는 모모톡 알림.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패턴을 풀고 모모톡 앱을 켰다.
최상단에 있는 메시지. 누가 보냈는지는 안나왔다.
의아함을 느끼며 익명이 보낸 메시지를 클릭하였다.
그리고 이내.
“……?!”
나는 숨을 흡 들이키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모모톡에는-
[빅시스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익명의 누군가가 보낸 경고가 담겨있었기에.
당황한 채로 가만히 메시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순간, 갑자기 상대방이 다음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신이 괴물의 심연을 바라볼 때, 그 심연 또한 당신을 바라본다.]
[꼬리를 감추어라. 시선을 거두어라.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발을 들이지 말아라.]
[괴물이 당신에게 주목하지 않도록 하라.]
몇 초가 지난 뒤, 메시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심호흡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이어나갔다.
불길한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지만 지금껏 해오던 일과 그리 다를건 없었으니까.
다만…….
‘이래서였나. 이런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거였어.’
이미 엔지니어부와 베리타스에 리오의 마수가 뻗쳤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상하리마치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던 그들.
평소랑 달리 낯설기 그지없는 행동들.
그 행동들의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u>빅시스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u>
밀레니엄의 폭군이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그 시작은, 주변에 있는 모두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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