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95



1.

누군가는 말합니다.

사람은 톱니바퀴라고. 사회라는,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작거나 큰 부품에 불과하다고.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사람은 각기 주어진 역할과 과업이 다르기에, 서로 화합하여 살아감으로써 사회라는 울타리를 형성해 개인을 구하는 것이라고. 인류의 가치는 다름아닌 화합과 공존에 있다고.

또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보편적인 공동체로 여기는 ‘사회’라는 영역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남을 짓밟고, 피를 발판삼아 유지되는 곳이라고.

철학적, 경제적, 사회적인 지표들과 정보들을 증거삼아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인류에게 있어 ‘평범’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같은 종족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함은 무엇일까요? 모든 인류가 죽음이라는 절대적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평범함일까요?

그게 아니면 애시당초 평범함은 존재했던 걸까요?

평범한 사람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회 규범? 윤리? 율법? 복음과 계시?

누군가는 모든 인류가 평등하다고, 주신과 율법 앞에서 지엄하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평범함이란 율법과 주신의 앞에 어긋나거나 그릇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죠.

사회의 규범과 윤리를 어기지 않고, 주어진 역할과 위치를 잘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평범함입니다.

학생답게. 어른답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우리는 모두 남들이 보기에 OO다운 모습을 보여야만 합니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 들어가면 평범한 것이며,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평범은 곧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평범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정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게 별로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타고나는 외형, 성격의 형성, 태어나는 지역, 인종, 성별과 자신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어떤 환경에 노출되며, 태어난 집안에 형편까지도.

우리는 삶마저 원하였기에 얻은 것이 아닌, 우연찮게 또는 누군가의 선택에 의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가 결정됩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였고, 순리였습니다.

그렇기에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 이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우리가 소유할 이름과 삶의 흐름마저도.

온전히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임을 말이죠.

우리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본래 타인입니다.

나고 자랄 ‘환경’을 부여하는 것도 타인입니다.

나의 외형도, 결점도, 성격도, 모두 자신만의 소유로 형성되는 것은 무엇 하나 없습니다.

그냥 그런 세상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평범함이고, 평등함입니다.

…….

간혹, 저에게는 이 모든게 부질없다고 느껴질 순간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잃고, 삶을 잃고, 이름마저 잃은 저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에만 남은 자신의 ‘과거’라 불리우는 흔적이, 실상은 허상에 불과할까 싶은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물론, 저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토록 고뇌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 처한 것도, 이 세상에 떨어지게 된 것도 모두.

그저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이라고.

원한도, 미움도, 고통도,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염세적인 감상을 넘어 체면하기에 이르렀죠.

제가 무언가에 분통을 품는다고, 저 자신의 상황이 변할 가능성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묻고 싶었습니다.

평범함이란 무엇인가요?

남들이 부여받는 것조차 받지 못한 저에게.

나의 것이 아닌 육신에 갇힌 제가.

하물며 본래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저 자신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말할 겁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하나가 특별하기에 평범함이란 본디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특별하고 소중한 아이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빙의한 몸은 이 세계에서 ‘모브’라 불리우는 아이의 것이었습니다. 남들 모두가 소유하는 이름마저 저는 없는 것이라 칭해질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전 자신의 특별함을, 가치를 소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유일한 장기를 통해 저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평범함’은 다른 말로 무개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만일 제가 남들의 앞에 나서지 않았다면 저는 평범해졌을까요?

두려웠습니다. 저의 존재를 잃을까 두려웠죠.

그리하여 누군가가 내 존재를 긍정해주길 바랬기에 톱니바퀴의 역할을 거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에 짓눌려 끝내 저 자신을 잊어버리는 순간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망각한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기에. 기억으로만 남은 저의 과거를 저 자신이 부정하고 잊어버릴까 두려웠습니다.

하여,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추위에 떠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불꽃의 온기이듯.

갈증에 숨결이 매말라가는 이를 살려내는건 한 줄기의 물방울인 것처럼.

이 신비로운 세상에서 홀로 현실을 기억하는 저에게.

고독함과 외로움을 달래줄 말을 건네주기를.

…….

아뇨. 정확히는.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일지도요.

마침내 저의 삶이 행복으로 가득차기를.

평범함이란 것을 몰랐던 제게 무언가를 배울 기회가 다시금 생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일 겁니다.

학생이었고, 아이였음에도.

학생다움과 아이다움을 배우지 못한 제게.

제가 맞이한 현상은 그러한 것들을 다시 깨닫게 해주기 위한 신의 축복이자 선물일지도 모르지요.

어른과 아이. 학생과 선생. 그리고 사랑.

저는 [블루 아카이브]를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다만,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이 세상이 이야기하는 가치를 적용할 수 없었으니까요.

교권은 추락하였고, 학생은 학생다움을 잊었습니다.

어른은 아이를 도구로 보았으며, 아이는 현실의 각박함에 시달려 아이다움을 망각하였습니다.

녹이 슨 톱니바퀴처럼, 그들은 끼긱거리며 사회라는 정글을 돌아다니며 생존과 환락을 추구했습니다.

그 빈틈에 청춘과 사랑이 깃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전 키보토스의 평범함을 알 수 없습니다.

이따금 궁금해지곤 합니다.

어른과 아이의 가치마저 상실한 저의 현실이 평범한 것일까요? 어른의 책임, 청춘과 사랑의 이야기를 설파하는 이 세계가 평범한 것일까요?

평범함이란, 무엇인가요?

2.

“…….”

늦은 오후, 유리창 너머로 천란한 석양이 빌딩들로 이루어진 숲 사이를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언제나 보던 풍경이지만, 서서히 태양이 저물며 주홍빛을 흩뿌리며 그 아래서 바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는 일상이, 실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쁘네.”

나는, 나나시 히이로는 그렇게 한참을 창가에 서서 세상의 풍경을 감상했다.

주홍색 노을이 검푸른 하늘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며, 빌딩이 가득한 숲의 찬란한 불빛이 어두운 밤을 서서히 몰아내는 광경. 도로를 물결삼아 흐르는 차량의 반짝임이 은하수처럼 이어질 때까지.

평범한, 그리고 일상저인 풍경들.

평소였다면 별다른 감흥을 가지지 못했을 모습들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순간만큼은 저 광경들이 지금껏 히이로가 보았던 그 어떤 예술보다 아름다웠다.

저 반짝임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진 못함을 안다.

도시를 투과하여 따스하게 빛나는 노을은 우주 공간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는 빛나는 불덩어리일 뿐이고.

찬란하게 여겨지는 야경과 마치 별똥별처럼 흘러가는 도로 위 차량들은 그저 하루의 일과를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흔적에 불과했다.

하지만 때론, 아름다움이란 현실이 아닌 마음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했다.

히이로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홍색 노을이 밤하늘의 어둠에 밀려나 서서히 하루의 끝마침을 알려오고 있었다.

그 검푸른 도화지 속에는 내가 기억하는 밤하늘과는 다른 하나의 선이 그어져있었다.

투명하고도 선명한 선은 마치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님을 알려주는 경계선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아.”

그리고 그 경계를 깨달았을 즈음, 히이로는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숨결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달랐다. 세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이 세상에 적응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이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새 주홍색의 노을은 물러나고 검푸른 도화지로 가득 찬 하늘을 보았다.

분명 현실의 지구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이 세상의 밤하늘에는 칙칙함이 아닌 처연함이 담겼다.

도화지에 찍힌 수많은 점들 사이에 떠오른 싯푸른 달이 아래에 있는 사람의 앞길을 비추듯 떠올라있었다.

분명 똑같은 풍경이지만,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이것이 히이로- 아니, ‘내’가 살아가던 현실과 이 세상의 차이였다.

지옥과도 같았던 현실이 공상 속 세상으로 뒤바뀌었을 때, 나는 아이같이 즐거워했었다.

그 기억을 다시금 되돌아보니, 어째서인지 마음 속 한켠이 너무나도 아려오는 것이다.

왜일까.

왜 나는, 기쁘면서도 슬펐을까.

“…….”

아아. 그랬던거였구나.

내가 키보토스 속 모브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건 나의 현실이 지독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 사실에 슬퍼했던건 나를 기쁘게 할 추억이 현실에 남겨져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하게. 남들과 똑같이. 다들 그러듯.

그 평범함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긴 시간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를 반복하였을까.

나의 탄생은 누군가의 파멸이었고, 나의 성장은 누군가에겐 손해였다. 또 나의 소망은 누군가에겐 절망으로 남아 나의 평범함을 짓누르곤 했다.

사랑을 몰랐고, 우정을 몰랐고, 평범을 몰랐다.

나는 현실에서 한없이 나약한 약자였지만,

히이로는 현실에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나의 머릿속에만 남겨진 과거의 흔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현실을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저 밤하늘의 아래에서 이 세상의 풍경 중 일부가 되어 나만의 역할을 다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다만, 이따금 찾아오는 나의 결핍과 마주하는 순간이 올때면 저도 모르게 과거라는 이름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는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괴리가 강한 세상이다.

현실처럼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는 세상도 아니며,

인간이 쌓아올린 탑을 자신들이 직접 부수며 멸종으로 나아가는 세상도 아니었다.

모든 인류의 목숨이 몇몇 국가의 권력자들의 손에 놓인 그러한 세상도 아니었다.

내가 갑작스럽게 빙의하게 된 이 세상은 분쟁도, 혐오도 없는 에덴동산과 같은 세상이 아니었다.

혼란도, 분쟁도, 갈등도, 혐오도,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이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에게 이 세상은 별빛과도 같았다.

찬란하게 빛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장소.

그런 내가 이곳에 도달한 것은 분명 기적이리라.

어느 위대한 분께서 내려주신 축복이요, 기회였다.

기적의 위대함을 실감할 때면 초월적인 존재의 손짓 한번에 이 모든게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간혹 찾아오긴 했으나, 그보다 더 큰 감사함을 마음 속에 담고는 했다.

트리니티의 시스터후드는 신을 믿지만, 나는 신의 흔적을 직접 경험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신. 참으로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이야기지 않은가.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이고, 괴리감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난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됐다.

평범함을 잃어버린 세상이기에, 마찬가지로 평범함을 모르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하.”

칙칙했던 기억, 그 기억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점차 깎여나가던 나의 영혼이 저 광경들을 구경함으로써 아주 약간 치유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웃음 속에서 새어나오는 한숨과 함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었다. 어느새 이토록 바깥 풍경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출발할 시간이다. 이제는 나약했던 자신을 버리고 영웅이 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평범함도 찾아야겠지.

[!– Slider main container –]


[!– Additional required wrapper –]






Tip: You can use left, right, A and D keyboard keys to browse between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