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어…”
“어이….”
“하, 이 새끼가.”
-쾅!
“일어나 새꺄!!”
“응헉!”
뒤로 자빠질려는 걸 팔을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아 멈춘다.
잠이 덜 깨서 멍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수십쌍의 차가운 눈초리가 되돌아온다.
“네 차례다. 트롤.”
나를 깨운 남학생이 똑같이 차가운 눈초리로 앞을 가리킨다.
그의 손끝으로 시선을돌리니 나를 노려보는 교수님이 교탁 앞에 서 계셨다.
그 눈빛을 보고서야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아, 응.”
의자에서 일어나 교탁으로 향하는데.
“우왓!”
-콰당!
뭔가에 걸려서 바닥에 대차게 넘어졌다.
“아야야…”
뒤를 돌아보니 어떤 남학생이 다리를 책상 안으로 쏙 집어넣는 것이 보인다.
명백히 잘잘못을 따질 수는 있었지만.
더 늦으면 내게 돌아올 교수님의 꾸짖음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에, 욱신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 교탁으로 향했다.
교탁 앞에 당당하게 허리를 쭉 핀채로 서 계시는 교수님은 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손 올려라.”
그가 내민 손에는 작은 수정구가 들려져 있었다.
그 수정구에 가볍게 손을 올리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은 이내 숫자를 이룬다.
단 한 음절로 끝나는 숫자를. 그리고 교수님은 그것을 발음한다.
“영(0)”
“푸흐흡..!”
동시에 들려오는 웃음소리.
간신히 막아 내긴 했지만, 이미 터진 것은 터진 것.
하지만 교수님은 딱히 제지를 하시지 않았다. 비웃음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매학기마다 학기별 최하점을 갱신하는구나. 아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반박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마력이 단 1도 없는 녀석이 이 아카데미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마라.
곧 실기평가 기간이 돌아오는 건 알고 있겠지? 거기서도 낙제점을 받으면 넌 성적미달로 퇴학이다.”
“네? 하지만 필기를 포함한 종합 점수로는 50점 이상…”
“아니, 이번에는 다르다. 너에게 마력이 1이라도 있었으면 말이 다르겠지. 평범한 일반인마저 최소한 마력이 5 언저리는 나온다. 하지만 너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로(0).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 지식을 써먹을 수 없으면 무용지물.”
교수님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작은 빛무리와 함께 두루마리가 소환되었다.
“학장님의 허가서다.”
그 두루마리 안에는 학장님을 상징하는 붉은 직인이 찍혀 있었다.
“우리 아카데미는 뛰어난 ‘마법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마법을 쓰지 못 하는 마법사라니. 언어도단이지.”
그의 신랄한 말에 전혀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야 전부 맞는 말이니까.
나는 황립 마법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
어렵디 어렵다던 필기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며 당당히 입학했으나.
문제는 내 체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전혀, 전~혀 마력이 모이지 않는 몸뚱어리.
마도 제국이라 불리는 이 나라에서, 엘리트 마법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 마법 아카데미에서.
나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 하다못해 지방의 농부들마저 노력만 한다면 아주 기초적인 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못했다.
“너는 우리 아카데미에 맞지 않는다. 꼴사납게 퇴학당할 바에는 자퇴를 권고하지.”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핫!!”
“푸흡…교수님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깔깔깔깔!”
양 귀를 가득 메우는 웃음소리.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
“후우….”
기숙사에 들어선 나는 곧장 침대로 걸어가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하아….”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 뿐.
마력을 전혀 쓰지 못 하는 내게 마법을 이용한 실기평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낙제점을 받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
따라서 퇴학도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퇴학이라는 이 두 글자는 분명 다른 학생들에게도 끔찍한 단어겠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가중된다.
나에게는 이 아카데미를 제외하면 돌아갈 곳이 없다.
부모님에게 버려진 나는 매우 엄격한 고아원에서 자랐고 내게서 가능성을 보셨던 어떤 후원자의 도움으로 아카데미 시험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후원은 끊겼고, 고아원도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동부의 표현을 쓰자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버린 것.
“….인생 망했네.”
그래, 오늘부로 내 인생은 시한부 판정받았다.
그나마 연명치료를 받던 내게 호흡기를 떼버린 것이다.
착잡한 마음에 침대에 늘어져 있자.
심각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눈꺼풀이 점점 닫히려고 했다.
“아, 밤새 공부하지 말 걸….어차피 다 의미 없….커허어어….”
—-
꿈을 꾸었다.
최근 몇 주간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시작은 분명 조금씩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항상 계단이 나왔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아무도 없는 아카데미의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본래 커다란 문이 있어야 할 곳에 계단이 있었다.
아래를 향하는 계단은 조명이 일체 없어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그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이 몸을 지배하고,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몸은 마치 물 속에 들어온 것처럼 이상한 부유감에 싸여 있지만 정신은 또렷해 계단의 수가 저절로 머리에 들어왔다.
정확히 70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까무잡잡한 피부에 귀가 평범한 인간보다 2배는 길쭉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 뒤로 이어진 계단을 막으며 인간 벽을 만들고 있었다.
‘어, 혹시 지나가도 될까요?’
정면을 뚫고 있던 그들은 내가 말함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눈이라기에는 한없는 세월이 새겨진 것 같은 눈동자가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곤 두 남자는 칼 같은 움직임으로 길을 비켜섰다.
‘어, 음. 감사합니다.’
나에게는 눈길도 안 주는 두 남자의 사이로 들어간 나는 다시 시작된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 계단은 정말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았다.
계단의 수가 세자리 숫자로 넘어가고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마침내 700번째 계단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나는 울창한 숲속에 있었다.
‘또 여기네.’
이미 보름째 같은 방법을 통해 이 숲에 들어왔다.
계단에서와는 다르게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숲을 걸어갔다.
한창 숲을 지나던 나는 마침내 목표로 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 고양아?”
숲속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
그 바위 아래에 작은 틈에는 작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미야옹
“오, 많이 나았네. 곧 있으면 걸을 수도 있겠다.”
이 고양이는 내가 처음 이 숲에 왔을 때 본 녀석이다.
심대한 상처를 입어 피가 땅을 붉게 적시고 있던 고양이를 발견한 나는 곧장 나뭇잎으로 상처를 감싸주었다.
꿈이어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는 멈추었지만 고양이는 애처롭게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도 이 숲에 올 때마다 이 고양이에게 여러 열매를 구해다 주며 성심성의껏 간호를 해주었다.
“어디 상처 한번 볼까?”
-에옹~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고양이는 즉각 몸을 뒤집어 하얀 배를 보여 주었다.
배에 났었던 상처는 이제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거의 다 나았네. 다행이다.”
-미야옹~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고양이는 행복하게 갸르릉 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귀여운 녀석.”
굴러다니는 고양이를 품에 쏙 넣어 안아준 채로 잔디밭에 드러누웠다.
“….고양아. 나 오늘 엄청 힘든 일이 있었다?”
-에옹?
“저번에 내가 마법을 못 쓴다고 얘기했었지?”
-에옹.
“…이번 실기에서 떨어지면,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다고 해.”
-에옹?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게 뭐가 문제인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거든. 부모님도 안 계시고, 후원도 끊기고, 고아원도 없어졌어.”
아려오는 가슴팍에 고양이를 품자 미약하게 콩닥거리는 생기가 느껴져 온다.
그 따뜻한 울림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만약 아카데미에서 나가게 된다면….마법지상주의인 이 나라에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겠지. 하하…길거리에서 아사해 버릴 수도 있겠네.”
-에옹!
“응? 그런 말하지 말라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진짜로 답이 없는 상황이 와버려서 말이야.좋게 좋게 생각하고 싶어도 계속 부정적으로 빠지게 되네.”
-…..
“응? 왜 말이 없어?”
내려다본 고양이는 뭔가를 깊게 고민하는 듯했다.
“풉, 생각하는 고양이라니. 아무리 꿈이라도 비약이 심한가?”
저 혼자 킥킥 웃으며 몸을 반 바퀴 굴려 돌아누웠다.
“…..내가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백, 수천 번은 반복해 중얼거렸던 말을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그러자 그때.
-내가 도와줄까?
“…………응?”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몸을 벌떡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지만 누군가는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
환청이었나?
-여기야 여기.
다시금 들려온 목소리.
이번에는 진원지가 명확하게 들렸다.
나는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고양이.
-내가 도와줄까?
고양이의 역삼각형 입이 귀엽게 꾸물거린다.
하지만 거기서 나와야 할 야옹 거리는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들리는 것은 중성적인 목소리.
그 순간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
‘꿈속 세상. 기나긴 토굴(계단). 울창한 숲. 말하는….고양이. 설마?’
나는 허망하게 중얼거린다.
“앨리스?”
-….그게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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