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루이스 골드썬.
골드썬 후작가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또래 중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편에 속했다.
후작가라는 강력한 뒷배경,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재능.
그는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아카데미에 오면서 자신보다 더한 집안, 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루이스는 납득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축복을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딱 한 명. 그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마법도 못 쓰는 주제에, 남들 발목이나 잡는 짐덩이 주제에, 심지어 천애고아 평민 주제에.
“들었어? 필기시험 만점자가 평민이래.”
감히….나를 이겨?
—-
“어이 트롤.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산책하러 나왔어.”
“아, 그래? 목줄은 어디다 두고?”
“…..뭐?”
“짐승새끼가 혼자서 산책하면 안되지. 주인님은 어디 계시냐?”
“…….”
아, 미치겠다.
하필 여기서, 하필 지금, 하필 오늘.
루이스를 만날 줄이야.
평소라면 그냥 대충 대꾸해주고 몇 대 얻어맞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오늘 내 옆에는….
“아서. ‘이건’ 누구니?”
릴리스가 있었다.
릴리스의 위장은 확실했다. 루이스는 내 옆에 서있는 릴리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 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루이스는 더욱 나를 몰아붙였다.
“뭐야. 유기견이냐? 그럼 내가 주워다 써도 되겠네?”
루이스가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루이스!”
내가 말리려 했지만 마법은 이미 완성된 이후였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날아와 내 목을 칭칭 감았다
“커헉!”
숨이 턱 막혀 시야가 흔들렸다.
“아서! 저 망할 것이 감히!!”
당장이라도 루이스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릴리스.
“멈춰요!!”
“응? 네가 웬일로 존대를 하냐? 매번 싸가지 없이 노려만 보던 놈이.”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
루이스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댄 자세 그대로 릴리스가 멈춰섰다.
“….아서. 지금 내가 ‘이걸’ 살려야 하는 이유를 대볼래? 난 도저히 모르겠거든?”
“살인은 안돼요.”
내 말을 자기한테 한 걸로 오해한 루이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죽이기라도 한데? 그냥 잘 가지고 놀아주겠-”
“넌 그 입 닥쳐!”
내 호통에 두 쌍의 눈이 벙찐 채로 나를 바라본다.
“….아서..?”
릴리스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크게 나올 줄 몰라서 조금은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두 쌍의 눈 중에서 붉은 눈에 시선을 맞췄다.
“저는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 보기 싫어요.”
“하지만 ‘이건’ ”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이거’
릴리스는 루이스를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았다……아니. 애초에 릴리스 입장에서, 즉 외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벌레와 다를 게 없겠지.
나는 그 호칭이 인간과 외신의, 나와 릴리스의 거리감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
릴리스는 내 외침에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화를 낸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반응이다.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루이스가 팔을 확 당기자 쇠사슬이 내 목을 조여왔다.
“야, 너 미치기라도 했냐? 혼자서 별 지랄을 다 하고 있네. 그러면 내가-”
-퍽!
“-봐줄 줄 알았냐?”
루이스의 주먹이 내 배에 꽂히며 폐의 숨이 한순간에 빠져나갔다.
“아서!”
“커흑…켁…켁….”
쇠사슬 때문에 호흡이 힘들었다. 충격으로 빠져나간 숨이 다시 보급되지 않자 현기증과 함께 세상이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서! 정신 차려!”
루이스의 목에서 손을 거둔 릴리스가 내게 달려와 쇠사슬을 풀어내려 했다.
“아…안..되여…..”
그런 릴리스의 손을 붙잡는다.
여기서 릴리스가 사슬을 풀어버리면 루이스가 더 심한 보복을 하려 들 것이다. 그걸 본 릴리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두려웠다. 차라리 이걸로 끝내는 게 나았다.
숨이 오랫동안 통하지 않자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절을 하기까지 앞으로 수초만이 남았을 그때.
“쯧, 어차피 곧 퇴학 당하는 놈을 데리고 내가 뭘 하는 거람.”
쇠사슬이 스르륵 풀리며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허억! 컥…커헉……흐읍! 켈록…켈록…..”
“야, 트롤. 실기 평가 얼마 안 남은 거 알고 있지? 기대하고 있어라. 그때 어디 하나 불구된 채로 퇴학당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내 손을 힘껏 짓밟은 루이스는 자신의 기숙사 건물로 걸어갔다.
“켈록 켈록!”
‘수, 숨이….’
홀로 남겨진 나는 갑작스러운 공기의 유입으로 기침 섞인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서. 입 벌려.”
아니, 홀로가 아니었다.
릴리스의 말에 몸이 저절로 반응해 입을 벌렸다.
“하아….웁!”
숨을 크게 들이킨 릴리스가 입을 맞췄다.
릴리스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는 나를 강하게 붙든 채로 내게 천천히 숨을 나눠주었다.
적정량으로 조절된 공기의 양 덕분에 기침이 점차 가라앉았다.
“하아…하아….하아……”
기침에 이어 호흡까지 안정되자 릴리스가 내게서 떨어졌다.
“괜찮아, 아서?”
릴리스의 태도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아까전에 내 호통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뇌에 산소가 도로 공급되자 다른 의미로 죽을 것만 같았다.
아, 최악이다.
걱정이 가득 담긴 릴리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까매지며, 의식이 뚝 끊겼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기숙사 화장실에 있었다.
멍하니 세면대를 처다보던 나는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며 잠시 거울을 보자 너무도 한심해 보이는 몰골의 내가 있었다.
“….젠장.”
찬물이 닿자 정신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았다. 여전히 멍한 기분이 남아있긴 하지만 훨씬 나았다.
돌이켜 보자 아까 전의 일은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발생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릴리스와의 격차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고 있던 나는 릴리스가 루이스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불안감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거기에 숨이 안 통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급발진을 하고 말았다.
“….멍청한 새끼.”
거울 속의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나를 그렇게 아껴주던 릴리스다. 방금 전만 해도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던 나를 인공호흡으로 도와줬다.
그런 릴리스에게 화를 내다니.
‘그래.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정말….’
세수로는 도저히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 전신 샤워를 마친 나는 몸을 닦으며 결심했다.
‘릴리스에게 사과하자.’
답이 두렵다는 이유로 질문을 회피한 내 잘못이 컸다.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답을 들어야겠다. 부디 그 답이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길 빌었다.
화장실을 나서며 바로 릴리스를 불렀다.
“저기 릴리스. 제가 할 말이……어?”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숙사 구조상 화장실에서 나오면 방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릴리스?”
릴리스가 없었다.
심장이 쿵 떨어지며 주변을 보는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어라? 다시 쇠사슬이 조여진 건가?
익숙한 증상에 반사적으로 목을 긁었지만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리 숨이 막히지?
-벅벅벅벅
숨 막혀. 목이…….아니야. 심장. 심장이 아파.
흐릿한 시야로 방을 다시 한 번 훑어보지만 릴리스는 거기에 없었다.
내게 실망한 건가?
내가 미워진 건가?
그래서 나를…..떠난 건가?
그리고 그런 사실을 깨닫자 마자.
“흐으윽…”
고통의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심장이….아니, 정확히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바보, 병신, 머저리!’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단 하나 뿐이던 내 편으로 스스로 밀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목을 거칠게 긁었다.
“아…아아…..아아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 할게요.’
‘제발…..제발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까. 제발!’
‘…….’
‘…..’
‘…’
‘제발 아무나….아무나 도와줘…’
그 순간.
-…..정말?
‘!!!’
뇌리를 찌르는 섬뜩한 목소리에 나는 잠시 울음도, 목을 긁어내던 손도 멈췄다.
-정말 도와줘도 되겠어?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담긴 분위기는 온세상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한데에 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울하고, 더러웠다.
“우욱!”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속이 뒤집히는 듯한 역겨움이 치솟았다.
‘누, 누구야…?’
-나? 나는 ■■■■■■■■■■■■■■■
기괴한 목소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했고 그건 듣는 것만으로도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사, 살려줘…..’
“….아..”
‘아무나!’
“..서…!”
-이리 와. 함께 가자.
‘릴리스!’
“아서!!”
“아서! 정신차려 아서!!”
“허억?!”
내 뺨을 두드리는 충격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아서?”
“허억….허억…..”
가픈 숨을 몰아쉬며 내 눈앞에 있는 흐릿한 실루엣에 집중한다.
초점이 점점 맞춰지며 그 실루엣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괜찮아 아서?”
릴리스였다.
“커피라도-…아니 꿀물이라도 타줄- 꺄아아악?!”
곧장 이불을 열어 젖히며 릴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이어서 느껴지는 포근하고 따뜻한 기분.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그 감각에 감정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화내서 미안해요.”
“제가…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테니까…..”
“제발…흐윽…..제발…!”
릴리스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며 애원한다.
“절 버리지 마세요….”
흘러나오는 것은 감정만이 아니었다.
릴리스의 드레스가 축축해졌다고 느끼던 그때.
“!!!”
릴리스의 부드러운 손이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절대, 결단코 너를 버리지 않아.”
릴리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굳센 결심이 느껴졌다.
“내 말. 못 믿니?”
“….흐윽…아뇨. 믿어요…무조건 믿을게요…”
이어서 나를 꼬옥 안아주는 그 힘있는 포옹에 나는 소리내어 커다란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제게 다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다시는!’
‘……’
‘….’
‘…’
이어서 나는 스스로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고, 미약하게, 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사랑해요, 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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