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13



“미안해요. 릴리스.”

“응.”

“진짜 미안해요.”

“…응.”

“제가 잘못-”

“그만! 사과 멈춰! 얼마나 해야 만족하는 건데?”

“…..훌쩍..”

“어휴…”

릴리스가 허공에 손을 내젖자 손수건이 나타났다.

릴리스가 건낸 손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 꼴불견이다. 품에 안겨서 훌쩍거리다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우리 아서가 무슨 꿈을 꿨길래 아기처럼 달라붙을까?”

“…….”

꿈….평범한 꿈은 깨어나자마자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금 그 꿈은 너무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특히 꿈의 막바지에 들린 그 목소리….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릴리스한테 사과하려고 했는데….크흥…..방에 저 혼자만 남아있어서….훌쩍…릴리스가 저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릴리스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이길.

“나는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럴 일은 없어.”

“….진짜요?”

“응, 평생 같이 있어줄게.”

릴리스의 확답에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물어봐야 해.’

릴리스에게 내 평생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루이스를 대한 것처럼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릴리스. 제가 화낸 이유 말인데요…..”

순간 릴리스의 손이 멈칫했다.

“릴리스는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

릴리스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예상대로였다. 우리가 벌레를 하찮게 보듯이 대부분의 외신들은 인간들을 벌레처럼, 아니 사실상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로 여겼다.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저는 평범한 인간인 반면에 릴리스는 무려 외신이니까. 제 평생은 릴리스에게 아주 짧은 시간일 텐데. 그러면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릴리스에게는 전부 하찮은 시간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내가 그 인간을 대한 태도에 화를 낸거니?”

“네.”

말했다. 내가 품고 있던 불안함을 릴리스에게 털어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릴리스의 대답이다.

적막함이 감도는 지금, 유일하게 내 귀에 울리는 것은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다.

누구의 것일지 모를 그 심장소리가 족히 100회 정도는 되었을 때.

“나는 그 무엇보다 네가 가장 소중해.”

“….네?”

잔잔한 목소리와 함께 릴리스는 품 속에 있는 내 턱을 잡아올렸다. 시선을 마주한 릴리스의 눈에 담긴 감정은….

“나는 소중한 네가 누군가에게 다쳤다는 이유로 화가 난 거야.”

한없이 따뜻한 감정이었다. 어제만 해도 릴리스가 나에게 보여주던 감정은 뒤틀리다 못해 배배 꼬아진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없이 깔끔한, 완성된 감정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 향할 목표를 찾은 것처럼.

“너를 다치게 한 그 인간이 너무도 미웠어. 그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모든 행동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 이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내게 싱긋 웃어보인 릴리스가 말하길.

“너와 지내는 시간, 같이 하는 모든 행동, 전부 나에게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래, 나는 인간을 딱히 좋게 보지는 않아.”

“하지만 너는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인간이 고통스럽게 죽어도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아. 하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면…..나는 그 어떤 때보다 슬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세월보다 너와 함께한 1초가 더 행복하고, 더 의미 있어. 그러니까….”

릴리스가 내 고개를 들어올린 채로 짧게 입을 맞췄다.

“불안해 하지 마. 두려워 하지 마.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건 다름 아닌 너니까.”

-두근….두근….

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들리는 이 빠른 심장박동은 내 것이다. 릴리스가 보내오는 순수한 감정에 다시금 심장이 통통 튀어올랐다.

“릴리스.”

“아서.”

동시에 튀어나온 부름에 우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푸하하하하!”

“아하하하하!”

기분 좋게 웃으며 이마를 마주 대었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릴리스의 감정. 뒤틀려 있던 그 감정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릴리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의 크기가 얼마나 커다란지.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맑은 감정을 거울 삼아 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발견한 감정은 릴리스가 내게 보내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 감정이 한쪽에서 한쪽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릴리스와 나는 그 감정을 담아 동시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릴리스.”

“사랑해 아서.”

이 말에 담긴 의미가 전과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불청객 같은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꼬르르륵…

“아…”

“음….”

내 쪽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릴리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릴리스.”

“……”

“저 봐요.”

“……”

“왜 식사를 안 하려고 하세요?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그러자 릴리스가 웅얼거리길.

“…다이어트..”

“……예?”

잠깐 몸을 떨어뜨려 릴리스의 전신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빼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릴리스의 몸에서 튀어나온 부분이라곤….음…저긴 빼면 안되는데…

“릴리스.”

나지막히 부르자 릴리스가 천천히 몸을 다시 돌렸다.

“전 릴리스가 굶는 걸 보기 싫어요. 진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만약 저 때문이라면-”

릴리스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한다.

“움직이지 마세요.”

릴리스는 내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입술이 맞닿고도 잠시 머뭇거리던 릴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명력을 빨아갔다. 속에 싸늘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그만큼 릴리스의 온기를 나눠 받으니, 오히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력이 얼마나 빠져나가든,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 앞으로 내가 릴리스를 굶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으니까.

식사는 빨리 끝났다. 더 이상은 필요없다며 릴리스가 먼저 떨어졌다.

입술을 떼던 릴리스가 문득 손을 뻗어 내 목에 얹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쇠사슬이 조였던 부분을 건드리자 따끔한 통각이 느껴졌다.

그게 표정으로 드러난 건지 릴리스가 손을 멈칫했다.

“…많이 아파?”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어차피 내일이면 다 나을 거고.”

루이스는 멍청하지 않다. ‘나라면’ 이 정도 상처 정도야 반드시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겠지. 녀석도 교수님은 무서워 하는 학생이니까 증거를 남길 리가 없었다.

“이런 괴롭힘을 지금까지 얼마나 받았어?”

“별로-”

“거짓말 하지 말고.”

“…..수없이 많이요.”

-꾸욱…

나를 붙잡은 릴리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파요 릴리스.”

“미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릴리스의 표정에 나는 설마하는 투로 말을 던졌다.

“뭐 고민하고 있어요?”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친 거지만 저 말에 답이 나와있었다.

“…..뭘 하려고요?”

설마…

“배나 좀 아프게 해줄까 싶어서.”

휴우…의외로 귀여운 복수다. 나는 또 사지절단 시키고 살려는 뒀다고 우길 줄…..

“그정도는 괜찮지?”

“음…. 그냥 가만히 냅두는 건-”

“안 돼. 널 다치게 했어.”

릴리스는 이미 결심을 내린 모양이다. 그렇다면 뭐…

“알겠어요.”

애초에 내 복수를 해주겠다고 이러는 건데. 계속 거절하기도 뭐했다….솔직히 조금은 고소할지도.

“아서. 궁금한 게 있는데. 이번에도 거짓없이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릴리스의 진지한 눈빛에 나도 덩달아 릴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곧 있으면 퇴학당한다면서?”

“네.”

“여기에 계속 남아있고 싶은 생각은 없어?”

“어……그건 왜요?”

“그냥 그럴 거 같아서.”

이미 놓아줬느니, 포기했다느니, 여러 말을 했지만 릴리스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진심이 아니니까.’

“네, 계속 남아있고 싶어요.”

릴리스의 시선이 다시 내 목에 잠깐 머물렀다.

“계속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친해진 인연들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나는 싱긋 웃으며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미친듯이 공부해서 간신히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퇴학 당한다니 억울해서요.”

내 답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던 릴리스는.

“후훗, 잘 알겠어. 네 마음.”

이어서 무언가를 입속에서 웅얼거리던 릴리스가 말한다.

“그럼 내가 널 도와줄게.”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릴리스는 반드시 이뤄줄려고 하겠지. 나도 같은 마음이라 알 수 있었다.

그런 릴리스의 마음이 기쁘기는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요?”

만약 가호처럼 릴리스에게 피해가 가는 방식이면 내 쪽에서 거절할 생각이다.

“음…..가장 편한 건 가호겠지만, 내가 지금 가호를 줄만한 상황이 아니거든.”

오케이, 일단 가호는 제외. 그런데…

“왜요?”

“지금 내 힘이 온전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호를 줄 때 나오는 파장이야. 그걸 누군가가 볼 수도 있거든.”

“아하! 신성력 파장!”

내가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누군가가 어떤 신에게 가호를 받으면 그 반동으로 주변에 신성력이 퍼져나간다. 하늘에 일렁이는 그 파장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북극의 얼음섬에서만 보인다는 오로라처럼 아름다웠다고 전했다.

그 파장은 강력한 신일수록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나타난다. 릴리스처럼 외신 정도면 당연히 엄청난 파장이 생겨날 것이고 그러면 릴리스가 말한 그 누군가가 알아채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하려고요?”

“한가지….떠오른 방법이 있기는 한데…아직은 좀 불안정해서 내일 시도해볼 생각이야.”

“릴리스. 만약-”

“-나한테 피해가 가는 방법이면 거절하겠다고?”

“…..네.”

“걱정마. 무리 가는 방법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 쪽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야.”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마워요 릴리스.”

“고맙긴 뭘. 이정도야 당연히 해줘야지.”

릴리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자 그 부드러운 손길에 몸이 나른해지며 하품이 튀어나왔다.

“하아암…..”

“피곤하지? 이만 자자.”

잠을 잔다고 하자 문득 직전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릴리스. 저-”

내 걱정을 알아챈 릴리스가 내 뺨에 손을 올렸다.

“걱정마. 내가 이번에는 악몽 꾸지 않고 잘 잘 수 있도록 축복해줄게.”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릴리스는 꿈의 신이기도 했지?

“응, 이렇게 하면…..쪽!”

내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하는 릴리스.

“이러면 악몽은 너를 건들지 못해.”

이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온기가 묘하게 안심되는 기분이었고, 덕분에 나는 내려앉는 눈꺼풀에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으음….잘자요 릴리스…”

“잘자 아서.”

—-

아서가 꿈나라로 떠난 그 시각.

어두운 아카데미 도서관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스르륵 나타난 그는 사서 자리를 넘어 들어가더니, 바닥 문 앞에서 멈췄다.

품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검은 돌로 사방을 막은 넓은 서가, 도서관 금지구역에 들어선 그는 빠른 걸음을 늦추지 않고 곧장 서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빨간 선이 그어진 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품에서 커다란 수정구를 하나 꺼냈다.

수정구를 양손으로 쥔 그가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 아지랑이는 천천히 수정구에 흡수되었다. 아지랑이를 다 먹어버린 수정구는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내며 어두운 서가를 비추었다.

수정구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조심스레 빨간 선을 너머로 발끝을 보냈다. 발끝이 선을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빠르게 선을 넘어갔다.

그는 안쪽에 자리한 단 하나의 책장에 도달했고, 이내 도서관에 도착한 이내 처음으로 육성을 내었다.

“….음?”

그는 잠시 멍하니 책장의 한 구석을 바라보더니 책장 전체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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