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
인터뷰는 내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사실상의 고백을 전해들은 두 기자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아직 두 분 커피 남았-”
덥석, 후루루룩!
쌍둥이는 동시에 컵을 들어올려 동시에 들이키더니 동시에 컵을 내려놓았다.
“잘마셨습니다!”
“잘마셨습니다!”
“후배님의!”
“성실하신 인터뷰!”
“감사합니다!”
“여기 정보비입니다!”
레지나가 내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안쪽에는 한장의 수표가 있었고 거기에는 내가 봤던 액수보다 더 큰 숫자가 적혀있었다.
“금릉을 찾아가세요!”
“빠르게 환전해드릴 겁니다!”
“방학에도 운영하는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꾸벅 인사하자 두 쌍둥이는 그보다 더 고개를 숙였다.
“아뇨! 감사하긴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후배님!”
두 사람은 뚝 떨어졌다가 스륵 녹아 사라지는 첫눈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혼자 남게 된 나는 수표에 찍힌 인장을 살폈다. 돈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모양, 금릉의 인장이다.
“금릉이라….”
마도 제국 황립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은 각자 다양한 모임에 소속된다.
단순한 친목을 위한 모임부터, 마법 실력을 기르기 위한 모임, 각자 취미가 일치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모임까지.
처음에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비공식적인 활동이었지만, 이내 그 규모가 커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들의 등장으로 아카데미 측에서 재정지원을 해주며 공식적인 활동으로 부상하였다.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모임의 수는 측정불가.
매년 수십개의 모임이 생겨나며 수십개의 모임이 사라지는 것이 모임활동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극소수. 아카데미 교무부에서 불법으로 지정한 어둠의 모임이 있었으니.
불법 도박, 불법 성상품화 등, 하나같이 불법 딱지가 붙은 모임들이다.
그런 어둠의 모임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명맥을 이어왔으며, 수많은 이해관계가 엮여 있어 아카데미 교무부에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양지 속의 음지.
돈만 있으면 뭐든 구할 수 있다는 아카데미의 암시장.
그곳이 바로 금릉이다.
‘빨리 끝나기도 했겠다. 지금 찾아가 볼까?’
—-
당당하게 간판까지 내건 작은 건물.
[금릉]
황금의 무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곳은 무려 아카데미의 부지를 일부 ‘구매’하여 건설한 장소다. 이런 대담한 짓을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압도적인 재력을 소유한 뒷배의 덕이다.
그 뒷배는 공식적으로는 불명이나, 마도 제국을 거점으로 두고 대륙 최대 상단을 운영하는 코인토스 가문의 자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마다 금릉에 막대한 지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를 통해 누구나 그 뒷배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고풍스런 나무문을 두들겼다.
쿵쿵
“저기….”
말이 채 끊나기도 전에.
벌컥
“어서오십쇼!”
인상 좋게 생긴 남자직원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뭘 원하십니까. 가볍게 여벌의 교복? 수업 준비물인가요? 아니면 설마….”
목소리와 고개를 잔뜩 낮춘 직원은 내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읊조렸다.
“젊은 여교수님들의 사진첩?”
아니, 뭐 그런 것도 팔아??
“아, 아뇨! 저는 수표를 교환하려고-”
“아하! 수표군요. 이거 억측해서 죄송합니다, 하핳. 액수는 얼마 정도 되는지?”
나는 수표에 적힌 액수를 읊었다.
“…흠. 상당한 액수군요. 누구한테서 받은 수표죠?”
“어… 레지나 선배와 존슨 선-”
“레지나와 존슨! 역시 그 두 사람이군요! 보증은 필요없습니다. 그 사람들이라면 뭐, 손모가지 날아갈 짓은 하지 않겠지요.”
“…예?”
금릉의 수표로 사기를 치면 손모가지를 가져간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아닙니다. 우선 들어오시지요.”
직원은 문에서 비켰고, 그 뒤로는 기다란 계단이 보였다.
직원의 인도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던 그때.
“처리를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전부 현금으로 바꾸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혹시 여기서 귀금속류도 취급하나요?”
“물론입니다, 고객님. 반지, 목걸이, 팔찌, 발찌, 심지어 왕관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왕관은 과장이겠지? ….설마.
“반지를 구하고 싶은데요.”
“어떤 반지를 찾으십니까? 삐까뻔적하게 보석이 박힌 것부터 수수한 은반지, 혹은 기능성 마법반지도 있습니다.”
“어…. 일단 두 개를 사고 싶은데요. 한 쌍으로 만들어진.”
직원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살짝 흘겨보며 하는 말이.
“혹시 하나는 선물용입니까?”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서프라이즈인가요?”
이번에도 끄덕
“상대방이 혹시 아리따운 이성분?”
끄덕
뭐지 이 사람. 조금만 더 대화하면 내 일가친척까지 (없긴하지만) 알아맞출 기새다.
직원은 호쾌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오호! 아주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저희 금릉에서 판매하는 커플링들은 하나같이 평이 아주 좋습니다. 혹시 말씀하신 수표액 내에서 맞춰야 하나요?”
내가 모아둔 돈이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보탠다고 크게 달라질 금액은 아니었다.
끄덕
“그렇군요! 떠오르는 물품이 몇가지 있습니다. 들어가서 보실까요?”
얘기를 하며 움직이다 보니 벌써 계단의 마지막이 보였다. 그 끝에는 지상에서 보았던 나무문을 세 배 정도로 키운 듯한 커다란 나무문이 달려있었다.
직원이 다가서자 문에서 끼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금지구역 문에서 들었던 소리. 침입방지 주문이다.
철컥 하며 문이 열리자 공손하게 나를 들여보내는 직원.
“어서오세요. 황금의 무덤, 금릉에.”
문 너머는 화려하게 장식된 지하층이 있었다. 괘나 오랫동안 내려왔던 이유가 높디 높은 천장에서 드러났다.
대리석이 깔린 윤기나는 바닥을 걸어가 작은 방으로 안내한 직원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안내 받은 방은 금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금색이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자칫 남용하면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금색을 짙은 붉은 천과 적절히 배합해 고급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주변환경에 괜스레 불편해져 엉덩이를 들썩였다.
혼자서 기다리기도 잠시, 직원은 몇 개의 상자를 카트에 실어서 끌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객님의 구매 한도 내에서 가장 괜찮은 놈들로 가져왔습니다. 한번 구경해보시지요.”
직원은 테이블에 상자를 내려놓고 하나 하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각각의 상자 안에는 한 쌍의 반지들이 정갈하게 담겨져 있었고, 생각보다 더 화려한 반지들이었다.
“…이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요?”
“그럼요. 물론 보석들의 급이 조금 떨어지거나 약간의 흠집이 있다는 등, 살짝 애매한 녀석들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그 금액 안에서는 가장 좋은 커플링이 될 겁니다.”
이른바 재고 떨이다.
하자가 있는 상품들의 가격을 인하해서 판매하는 것이다.
보석들의 급은 솔직히 보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게 딱히 다가오지 않았고, 작은 반지들이라 흠집이 있어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반지들이었으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반지들이었다.
그것들을 찬찬히 살핀 나는 한 쌍의 반지에 눈길이 갔다.
“저건 무슨 반지죠?”
“아, 이건 문스톤 반지입니다.”
“문스톤이요?”
겉은 투명하면서도 안쪽에 진한 붉은 색을 가진 신비로운 빛깔의 보석이 돋보였다.
“다른 이름으로 월장석이라 불리는 이 보석은 연인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가 있지요.”
“대륙 남부에서는 이 문스톤으로 미래를 예언하고 좋은 미래를 얻을 수 있으며, 연인과 함께 문스톤을 착용하면 그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 사람들은 이 문스톤을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착용자의 정신을 지켜준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남부에서는 상당히 값비싸게 팔리는 보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살펴보았지만 이 반지에는 흠집도 전혀 없었으며 보석도 아름답게 빛나기만 했다.
“정말 제가 살 수 있는 건가요? 조금 비싸 보이는데….”
“음…. 사실 정상적인 문스톤 반지는 지금의 금액으로는 어렵습니다만. 이 반지는 조금 특이해서 말이죠.”
흠집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자세히 봐도 전혀 모르겠다.
직원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사실 문스톤은 저렇게 붉은 보석이 아닙니다. 오히려 푸른 색을 띄는 보석이죠. 푸른 색이 진하고 밝을 수록 더 값진 문스톤으로 받아들여집니다만, 저 보석은 이상하게도 진한 붉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아름답긴 합니다만 저 색을 불길하게 여기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조금 가격을 깎아서 파는 거죠.”
직원은 자신의 말에 내가 마음을 돌릴까봐 조마조마한 눈치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지에 마음이 쏠렸다.
저 진한 붉은 색이 마치 릴리스의 홍안과 입술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석뿐만 아니라 링 자체도 상당히 고급져 보였다.
“이걸로 할게요.”
“좋은 선택입니다, 고객님!”
화색을 띈 직원은 빠르게 다른 상자를 치우고 문스톤만을 남겨두었다. 그 영롱한 붉은 빛에 매료된 나는 반지를 낀 릴리스를 상상하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걱정이 떠올랐는데.
“어…. 생각해보니까 반지가 안 맞으면 어떡하죠?”
안 맞으면 환불이라도 해야하나?
그러나 이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마세요. 고객님과 상대분의 손가락 사이즈만 알려주신다면 저희 금릉에 소속된 프로 금속마법사가 당장에라도 크기를 조정해드릴 수가 있으니까요.”
“혹시 추가액이 붙을까요?”
“아니요. 저희 금릉은 그런 사소한 서비스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고마우시다면 저희 금릉을 더 자주 이용해주시는 것이 저희에게 주시는 최고의 대가지요.”
과연 뛰어난 서비스 정신이었다. 괜히 아카데미 교수님들까지 몰래 금릉을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제가 아직 ㄹ….상대방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서 그런데 나중에 다시 찾아뵈도 괜찮을까요?”
“당연합니다. 한번 구입의사를 밝히셨으면 그 뒤로 일주일은 우선권이 생기십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대기자가 있을 시 그 사람에게 우선권이 넘어갑니다만, 고객님께는 다행이게도 그 문스톤 반지는 여태 단 한번도 구입의사를 밝힌 고객님이 없었습니다. 안심하시고 천천히 알아오시지요.”
“그럼 내일….은 약속이 있고, 모레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원의 빠르게 상자를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올아와서 나를 바깥으로 안내했다.
마침내 금릉의 출구로 돌아오자 직원은 내게 고개숙여 인사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반지는 약간의 악성재고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싸게 사서 썩혀만 두는 게 아쉬웠는데 마침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럼, 내일 모레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시길.”
나무문이 닫히자 나는 꿈만 같은 기분에 잠시 금릉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몸을 돌려 기숙사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기쁨으로 가득차 가볍기 그지없었다.
‘내일 데이트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가락 사이즈 알아내야지!’
반지를 받은 릴리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라움? 기쁨? 감격? 뭐가 되었든 실망만큼은 안 했으면 좋겠다.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찬 마음을 가지고 기숙사로 달려간다. 릴리스가 기다리고 있을 그 기숙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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