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101



1.

첫 만남의 당혹감도 내려놓고 시작된 대화.

우리는 먼저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꿈 속 세상의 풍경을 대화하기 편한 환경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꿈 속 세상에서의 생활이 익숙한 세이아의 취향대로 바꾸어나가는 것에 가까웠지만.

자각몽(自覺夢).

주로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라 불리우는 현상 속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 속 세상을 개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대로 유리조노 세이아는 누구보다도 꿈 속에서의 생활에 익숙한 꿈 전문가라 할 수 있었기에 주변 환경을 조금 바꾸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쿠구구-

드드드드-

땅이 뒤집히고,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직후 새햐얗기만 하던 꿈 속 세상에 초목이 피어오르고 트리니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솟아올랐다.

가히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듯한 풍경.

하지만 나는 세이아가 일으키는 이 현상은 창조보다는 ‘복원’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챘다.

세로로 길게 뻗어진 다과 테이블, 창 밖으로 보이는 시계탑, 뻥 뚫린 공간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트리니티의 전망이 한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상류층이 있을 법한 공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게 익숙한 장소이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함께 다과를 즐기던 장소인가.”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저의 친구들과 함께 트리니티의 풍경을 구경하며 대화를 나누던… 제게 있어서 가장 강렬하고도 익숙한 장소이자, 기억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이아가 선생과 대화를 나누던 때의 풍경도 지금과 똑같았다.

아무래도 세이아는 꿈 속 세상에서 이 장소를 단숨에 복원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리워한 모양.

아니, 그리움 뿐만이 아닌 다른 감정도 있으리라.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보는 세이아가 이 장소만을 이토록 정확하게 재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그녀에게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니까.

“대체 몇 번이나 이 짓을… 아니,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나. 괜한 질문을 했네.”

“……괜찮습니다.”

아득한 횟수이리라. 정말로.

눈앞에 있는 소녀가 겪는 현상을 생각하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이른 시기에 빙의했다면, 이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쓰게 웃으며 다과 테이블에 앉아 어느새 세이아가 준비한 홍차를 들이켰다.

그런 내 곁에서 마찬가지로 씁쓸한 미소를 짓던 세이아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대충 환경을 가꾸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해보자- 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

우리가 서로에게 원하는 질문은 많지 않았다.

서로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질문으로도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일말의 확신을 지니고 찾아온 것이기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동일한 현상- ‘지식의 저주’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는 만큼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우선 내가 세이아에게 얻고자 한 의문을 정리하자면.

첫째, 내가 신비를 잃은 배경.

둘째, 미래에서의 나의 모습.

셋째,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확신.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아직까지 나를 괴롭히는 의문은 많았으나 그것들은 아무리 예언자라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의문들이었기에 이 정도만을 묻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질문들을 들은 세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확히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일련의 ‘낭패감’이 깃든 표정을 지은 것이다.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세이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곤 쓰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모든 질문엔 답하지 못하겠네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두 번째 질문, 그것은 오히려 제가 당신에게 묻고자 한 질문이었으니 말이죠.”

“……?”

이게 무슨 소리지?

미래의 내 모습을, 나한테 묻는다고?

예지 능력을 지니지 못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세이아는 설핏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 예지 능력이 없다는건 알고 있습니다. 이건… 그저 저 자신의 의문. 제 예지 능력에서 발견한 변수이자, 가능성일지도 모르는 것.”

“……가능성?”

세이아의 입에서 흘러나올 단어가 아니다.

그녀의 예지에 의하면 이 세계의 미래는 태초의 순간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

가능성과 같은 단어는 그 예지에 반하는 가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이아는 나를 들여다보며 그런 예지의 가치마저 부정하면서까지 나를 깊게 탐구하고자 하고 있었다.

마치, 절망스러운 미래를 바꿀 희망이라도 본 것처럼.

“당신이 아는 지식은 사실 미래라기보단 ‘과거’에 가깝죠. 한번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니. 그런 이유에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진다.

어느새 자신만의 세상에 빠진 세이아가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치지직!

순간, 세이아의 금빛 눈동자가 불길하게 명멸하였다.

“흐읍……?!”

“세이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세이아는 그저 불길한 눈빛을 토해내며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문장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임? 갑자기 뭐임?

세이아 쟤 눈동자 왜 저러냐.

“어, 째서, 예지가 지금……!”

힘겹게 말을 토해내는 세이아.

그 말을 통해 현재의 세이아가 다시금 불길한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신비인 ‘예지’의 힘 속으로.

왜? 어째서 이 타이밍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나는 차분히 그녀가 제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부르르 떨던 세이아의 몸이 굳고, 불길한 기세를 토하던 세이아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았다.

이내, 세이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죄송합니다, 실크.”

“응?”

뭐가 죄송하다는 것일까.

내가 의아한 시선으로 세이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딘가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제가 본 미래에는…당신이 없습니다, 실크.”

“……?!”

충격적인 말이 세이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당신에게 미래를 알려드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제가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언자의 기세를 드러낸 세이아가 금빛 눈동자에 신비로운 빛을 담아내며 내게로 고개 돌렸다.

그리곤 갑자기 눈물을- 어?

세이아가 날 보면서 대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게 뭔 일임??

“야, 야! 갑자기 왜 그래! 괜찮아?”

“……당신께선 제 예지에 잡히지 않으시지만, 저는 어렴풋이 당신께서 내린 선택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이야.

선택이라니?

“세상에 얽매이지 않기 위한 선택.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런 거였군요…….”

“세이아?”

“아아. 당신께선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남으셨습니까…….”

세이아는 어느덧 내게 다가와 손등을 어루만지며 더욱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쁜 여자애가 우니까 마음이 아파왔지만, 그보다 더 한 당혹감과 의문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나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세이아를 보았다.

세이아는 그런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이해한다는 듯 처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군요…. 지금 ‘시점’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일. 아득한 과거에서 내린 선택이었습니까.”

“……아득한, 과거?”

“그런 ‘당신’과 다른 선택을 내린 자가 보입니다…. 제가 보았던 종말의 순간, 모두의 시련으로 남아 초월을 이룩하려는 악마가 보입니다…….”

“…….”

“지금의 혼란을 만든 자. 다른 영역에서 이 세상에 없던 악종(惡種)을 보낸 자. 순리를 비틀면서도 모두를 천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자. 그 자가 언젠간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타날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세이아는 자신의 말투마저 벗어던진 채 내게 어떠한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언(豫言)이자, 동시에 두려움으로 가득한 고해(告解)와도 같았다.

“많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나아가소서.”

“…….”

“굳건한 신념 아래에서 모두를 구원하소서.”

세이아는 이내 진심으로 두려운 것을 보았다는 듯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러한 세이아를 품에 안아주면서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세이아가 해준 이야기들을 들은 순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감각이 머릿속을 간질거렸다.

이내 흐릿한 환영이 일렁거렸다.

– ‘내가 모두를 천상의 영역으로 이끌겠다.’

– ‘만인을 구원하여, 그들을 위한 목장을 만들겠다.’

광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긍지도, 질서도, 미덕조차 남지 않은 악성(惡性)의 울림이 기억 속 한켠에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것의 정체를 안다.

‘나의 미래, 혹은 과거.’

어쩌면, 내가 도달할지도 모르는 종착점.

끓어오르는 거품 중 하나에 속한 또 다른 세상.

그곳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자신.

세이아가 본 존재가 내가 생각하는 그 자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나와 그 존재는 세이아에게 달리 관측되는가?

내가 과거에 내린 어떠한 선택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그 의문의 해답이 있을까?

“…….”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의문을 해소할 방법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제 예지에서 벗어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세이아의 저 말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미래는 결정되었는가?

혹은, 혹란스러운 가능성의 집합일 뿐인가?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3.

“이제 진정 좀 됐니?”

“…으읏. 네, 네…. 죄송합니다…….”

어느덧 정신을 차린 세이아는 방금의 일을 모두 기억하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며 쓰게 웃었으나 어째서인지 세이아는 내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이아…?”

“……이대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 어. 뭔데? 말해봐.”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이아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내 무릎 위에서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말하기 힘든 일인 것일까.

그런 의문에서 세이아를 바라보고 있던 순간.

세이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뭐를…?”

“부디 언젠가, 제 친구들을 구원해주시길.”

“…….”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말은, 티파티의 일원이자 예언자인 유리조노 세이아 개인이 내게 보내오는 부탁이자─.

“저의 예지에서 벗어난 당신만이, 어쩌면 모든 비극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종의 애원이기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친구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갈망이었다.

아득한 세월동안 절망적인 미래를 보며 모든걸 포기하고 있던 세이아였기에, 눈앞에 나타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자 발버둥치고 있었다.

다만 누군가를 붙잡는 방법따윈 모르는 그녀였기에 서툴게, 그리고 낯설게 전달하는 기도이기도 했다.

그 면면을 살피니 참 안쓰러우면서도 눈앞의 세이아가 참으로 기특해보였다.

“세이아.”

“그러니 부디…….”

“세이아. 세이아.”

“네, 네?”

나는 불안에 몸을 떠는 세이아를 꼭 안아주었다.

갑작스레 백허그를 당해 당황했는지 세이아가 고개를 돌려 떨리는 금빛 눈동자를 빛내는 모습.

“걱정 마. 나는… 모두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나는 너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너도 구해낼 생각이야. 그러니까…….”

이제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세이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세이아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자, 동시에…….

‘나 자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

나와 세이아는 비슷한 처지에 속해있다.

동일하게 불길한 미래의 일을 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우리는 서로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고, 지니고 있는 힘도, 이룰 수 있는 일도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비슷한 처지로 생각한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지식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낼 수 있었다.

내가 방금 세이아에게 확신 어린 예언을 통해 위로받았듯… 나 또한 그녀를 위로해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이해자였으니까.

“세이아, 나 믿지?”

“……네. 그럼요.”

“그럼 지켜봐줘. 내가 모두를 구할테니까.”

“하하, 하하하…….”

이내, 세이아의 눈에서 물기가 차올랐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보이는 눈물에는 평온한 안도감이 깃들어있다는 점이다.

“…당신을 만나러 오길 잘했네요.”

세이아는 그리 말하며 작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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