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2
1.
인간은 본디 행운이라는 요소에 민감하다.
보다 정확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자신에게 다가오는 온갖 위험에 대한 반발 작용이 본능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행운이란 본디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이자,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었으니.
고작 불과 돌맹이를 다루던 미물에 불과했던 시절을 지나 이성(理性)이라는 것을 깨우친 인류였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미래’와 ‘불확실성’에 대한 것들은 불안하고 두렵기 그지없는 요소였다.
타로 카드, 사주팔자, 점성술, 풍수지리.
사람들이 이런 미신을 믿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미신에 가까운 점복학이 탄생하게 된 것은 인간이 그만큼 운적인 요소에 의존하는 존재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든 인간에게는 단 한번의 삶이 주어지는 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이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트리니티에서 내가 얻고자 한 것은 확신이었고,
그 결과 나름대로의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고민을 얻고 말았네.”
전생의 지구와 달리 ‘진짜’ 예지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내가 들었던 내용을 상기한다.
그것은 분명 내 심마(心魔)의 일부를 정화할 만큼의 확신을 안겨주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고민을 품게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 “많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나아가소서.”
– “굳건한 신념 아래에서 모두를 구원하소서.”
– “‘당신’과 다른 선택을 내린 자가 보입니다….”
– “종말의 순간, 모두의 시련으로 남아 초월을 이룩하려는 악마가 보입니다…….”
– “지금의 혼란을 만든 자. 다른 영역에서 이 세상에 없던 악종(惡種)을 보낸 자. 순리를 비틀면서도 모두를 천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자.”
– “세상에 얽매이지 않기 위한 선택.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런 거였군요……”
– “아아… 당신께선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남으셨습니까…….”
굉장히, 절묘하면서도 불길한 말들.
당시에는 급박한 상황이었던 탓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니 그녀가 한 말들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충 세이아가 전달한 예언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내가 원하는 바를 위해 나아가라.
둘째,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린 존재가 있다.
그리고 셋째, 나는 이미 과거에 어떤 선택을 내렸다.
하나같이 ‘이해’가 가능한 정도의 말들.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해석하거나와 같은 행위는 불가능한 지극히 추상적인 문장들이었다.
모든 내용을 알 수는 없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도록 하는 문장들이다.
…….
이상하지 않은가?
내게 너무나 딱 맞는 조언들이다.
지금 겪고있던 고민을 날려버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해줄 정도로 확고한 내용들이었다.
…너무나도 편의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해보면 세이아의 예지가 일어나는 방식도 방금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세이아가 저 정보들을 알고 있지?’
처음에 든 의문은 바로 저것이었다.
세이아의 예지 능력, 그것의 본질을 일부 깨달았기에 느낀 위화감. 그것은 바로 정보의 출처였다.
예지몽을 꾸는 것. 이것이 세이아의 능력이다.
예지 능력을 통해 세이아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육신의 한계를 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면… 세이아의 예지 능력은 오직 ‘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꿈 속 세상에서 나와 세이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이 또한 ‘예지몽’이 아니냐 물을 수 있겠지만… 절대로 아니다.
그녀가 능력을 쓰는 형식은 의식을 분리한다거나 하는게 아닌, 말 그대로 다른 ‘관점’을 얻는 것.
방금처럼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 그녀의 관점 자체가 특정한 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세이아는 자리에 앉아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마침 딱 알맞은 타이밍에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어떠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마침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이것이 내가 느낀 첫 번째 위화감.
‘세이아가 말하길 그녀의 예지에는 내가 관측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내가 과거에 한 선택을 깨달았는가?’
그녀가 내게 전달한 예언을 가장한 조언들.
예지 능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정보들까지.
세이아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녀의 예지에서 벗어난 유일한 존재라고.
그렇다면 세이아는 대체 무슨 예지를 한 것인가?
주장이 모순되어 있다.
예지 능력의 본질을 떠올려보자.
세이아가 지닌 힘의 근원은 미래에 대한 결정론에 의거해서 능력이 발동된다.
우주의 운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다. 이처럼 결정된 미래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관점을 얻는 것.
그것이 세이아가 지닌 ‘예지’의 본질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세이아가 내게 건네준 정보들.
첫째, 내가 원하는 바를 위해 나아가라.
둘째,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린 존재가 있다.
그리고 셋째, 나는 이미 과거에 어떤 선택을 내렸다.
현재, 미래, 그리고 과거.
예지의 결정론에 의하면 모든 운명은 태고의 순간부터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세이아가 말한 정보들은 모두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예지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느낀 두 번째 위화감이었다.
‘내가 예지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세이아는 어째서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거지?’
모든 시간선 중에서 나만이 특별하다!
…라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엔 내가 본 것이 너무나 많았다.
애시당초, 심마(心魔)에 빠진 이유 중 하나가 나 자신조차 끓어오르는 거품 중 하나임을 알았기 때문이지 않던가?
‘……물론 살짝은 다르겠지만.’
다만, 그녀가 말한 ‘과거에 내린 선택’이 일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세이아가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 뭔가 범상치 않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내가 특별해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어쨌든,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과연, 그때 세이아가 본 것은 ‘예지’가 맞는가?’
꿈 속 세상에서 세이아와 내가 대화를 나누던 순간 절묘하게 찾아온 예지.
그러나, 정작 까놓고보니 예지의 특성보다는 그 반대에 가까운 형태로 정보가 전달되었다.
그것도 딱 내게 적절한 정보들만이 말이다.
“…….”
너무나도 편의적이고,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정보 얻었잖아 한잔해~‘ 라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초감각이 내게 경고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감각. 지금의 위화감을 잊지 말라고.
“……설마.”
번뜩하며 깨달음이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불길한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이아는 말했었다.
지금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자가 있다고.
그리고 그 자는 초월을 꿈꾸고 있다고.
초월(超越).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곱씹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파지는 현상이 있었다.
들끓는 거품들 속에서 본 광경.
혼잡하게 뒤섞인 무수한 운명의 중첩.
새빨간 세상. 누군가의 비명.
가볍게 터져가는 무수한 거품들.
그리고… 누군가의 손길.
그 손길은, 한순간이나마 히이로를 일개 ‘등장인물’로 삼게 만들 정도로 초월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초월’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
미래는 결정되었는가?
혹은, 혹란스러운 가능성의 집합일 뿐인가?
후자의 주장으로는 이 우주엔 수많은 평행세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내가 1이라는 선택을 했다면, 2라는 선택을 내린 자신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자신은 두 가지 선택지를 초월한 3을 선택할 것이다.
세이아는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린 자가 ‘초월’을 이룩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 또한 비슷한 영역에서 다른 선택을 내렸다고 세이아가 말했었지.
여기서 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내린 자신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수많은 우주 중에 이미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
불길한 상상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상상은 아니다.
방금 겪었던 ‘비정상적인 예지’가 그 증거였다.
결정된 운명이 아닌, 가능성을 비추던 예지의 힘.
그것은 정녕 세이아 그녀의 예지였는가?
혹여나… 다른 누군가가 개입한 현상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내가 느낀 세 번째 위화감이었다.
2,
본의 아니게 목적을 달성했으나, 나는 아직 트리니티에서 돌아갈 때가 아님을 알았다.
딱히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밀레니엄에 돌아가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메인스토리의 흐름에 휩쓸려 다른 것에 신경을 쓸 틈이 없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에.
‘마음도 이미 굳혔으니…….’
세이아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는 예언에 가까운 조언까지 얻은 시점에서 물러설 것도 없었다.
나는 메인스토리에 개입하기로 했다.
게임개발부와 폐허에 가서, 아리스를 데려올 것이다.
물론, 그녀의 교육(?)에는 되도록 관여하지 않겠지만 내 힘이 닿는 범위까진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결판을 내야겠지.’
이번 메인스토리에서 나는 이전에 미뤄두었던 한 선배와의 싸움을 재개하게 되리라.
어느 정도 미래는 변하겠지만, 무엇보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미카모 네루. 허무하게 끝났던 일전의 싸움.
아마 이번에는 분명하게 결판이 나리라.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건 다 하고가자고.’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고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고민은 길지 않았다.
타타타타탕─!!
오늘도 소란스러운 키보토스의 일상 소리.
거미줄을 타고 하늘을 날던 나는 귓가에 잡히는 소리에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도착한 현장에서 내가 본 것은-
“내, 내 앞에서 나쁜 짓하는건 요,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정의실현부 소속의 어느 분홍머리 소녀가 벌벌 떨면서 테러를 일으키던 헬멧단에게 단신으로 맞서려고 하는 용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나, 나는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니까……!”
소녀는 머리에 난 날개를 부르르 떨면서 선언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내며 정의를 설파하는 소녀- ‘시모에 코하루’의 모습에 히이로는 감탄했다.
두려움을 삼키고, 적에게 당당히 맞서다니.
이 얼마나 올곧은 신념과 기개란 말인가!
“너, 히어로가 되지 않겠나?”
어느새 코하루의 뒤에 나타난 히이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3.
그 시각,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히이로가 소속되어 있는 초현상특무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누구를 찾아오셨다고요?”
“나나시 히이로. 이 동아리 소속 맞지?”
“네…. 맞습니다만…….”
히마리는 손님을 대접하면서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내심 엄청나게 당황하며 연신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 히이로에겐 무슨 용무로……?”
초현상특무부에 찾아온 손님이 그 ‘선생’이었으니까!
왜 갑자기 이 시기에 선생이 찾아오는거야?!
히마리는 도저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질문을 건냈다.
선생이 웃으며 답했다.
“아. 전에 도움을 좀 받아서. 보답하기 위해서야.”
“도움, 말인가요?”
“아비도스에서의 일.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아.”
아비도스라면, 히이로가 두 개의 신분으로 활동하며 끝내 ‘비나’를 쓰러트렸던 장소였다.
그곳에 선생도 있었으니 인연이 있기는 했겠지.
하지만, 히마리는 그렇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설마, 정체를 들킨건 아니겠죠……?’
수많은 선행과 능력을 연이어 증명하며 키보토스에서 실크와 비견될 정도의 유명세를 얻은 선생이다.
가장 유명한건 이 도시에 유일한 남성이라는 점과 선생이 보여준 학생을 위하는 그의 진심이었지만… 히마리가 경계하는건 선생이 선보였던 수많은 불가해한 능력들이었다.
만약… 그 능력들 중 하나로 실크의 정체를 파악하고 찾아온 것이라면 자신은 무슨 대응을 해야하는가.
‘……모르겠네요.’
선생은 명백히 악인보다는 선인에 속했지만, 실크의 정체가 정체인 만큼 최대한 감추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미 들켰다고 해도 묘하게 큰 걱정이 들지는 않는 것이다. 선생이라면… 학생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만…….
“히이로 좀 불러줄 수 있을까?”
“어, 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히마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히이로는, 지금 자리에 없답니다…….”
“응? 수업이라도 듣는 중이니?”
“아뇨… 그…….”
“??”
“밀레니엄에 없어요. 친구를, 만나러 가서.”
“……아?”
선생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걸 알아챈 모양이다.
히마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쓰게 웃었다.
‘히이로… 제발 빨리 좀 돌아와요……!!’
이러다 저… 긴장해서 죽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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