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3
1.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전생의 지구에서 한때 유행했던 마블의 히어로 영화를 대표하는 영웅 중 한 명으로, 한국에 사는 젊은 세대라면- 그것도 문화 생활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이들이라면 아마 열 중에 아홉은 들었을 이름이다.
마블의 히어로 집단인 ‘어벤져스’.
그 집단의 수장 격인 아이언맨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인물이자, 그야말로 영웅의 표본이 되는 자.
캡틴 아메리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파란색 슈트를 입고 미국 국기를 연상시키는 방패를 들며 싸우는 슈퍼 솔져.
뛰어난 전투 실력과 판단력, 무수한 전장 경험과 직관적인 시선, 더 나아가 강인한 정신력까지.
캡틴이 보여주는 고결한 신념과 이상은 그가 문자 그대로 ‘영웅’이라 불리게 된 근원이자 근거가 되는 것들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캡틴의 일부 행적을 보고는 ‘블루 스컬’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신념과 이상, 그리고 정신력은 확실히 본받을 점이 있는 모습인 것은 틀림없었다.
‘영웅’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
그것이 ‘캡틴 아메리카’였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내가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 존재이기도 하였으니.
아직 슈퍼솔져가 되기 전의 순간, 가장 나약했던 과거에도 그는 고결한 신념과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선과 악의 이치를 알며,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본디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완성된 존재였기에.
그 때문일까.
나는 눈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테러범들에게 맞서고자 하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게 되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라 소개하면서도, 그녀는 테러범들을 향한 총구를 내리지 않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상대방의 악의에 두려워하면서도,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적들과 싸우겠다는 듯 긴장한 모습.
“……대단하구나.”
그녀의 정신은 분명 캡틴처럼 강인하지 않다.
또한 육체마저 헐크나 스파이더맨처럼 특출난 편에 속하지도 않았다.
외소한 체격, 악의에 짓눌린 기세,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흔들리는 시선까지.
무엇 하나 영웅다운 모습은 없었지만… 그 모든걸 묻어버릴 정도의 용기가 그녀에게 있었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강인한 신념이 담겨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단다. 나머지는… 천천히 성장하면 될 일이니.”
“에, 에엣? 무슨- 어?! 시, 실크……?!”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나. 트리니티에 너같은 아이가 있다니 말이야.”
곁에 아무런 동료도 없이 홀로 나선 것을 후회하던 자그마한 소녀가 나를 보며 눈동자를 키운다.
코하루에게 악의 가득한 반응을 보이던 테러범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불의와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영웅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지.”
“…….”
“그 마음을 잃지 말거라. 그리고… 너 자신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그 용기가 단순히 객기로 남지 않도록 하거라.”
객관적으로 보면, 방금 소녀가 한 행동은 즉흥적인 감정에 못 이겨 나선 행위였다.
내 눈에는 그것이 명백한 용기의 감정으로 보였으나, 누군가는 그것을 충동이라 부르겠지.
그러니 지금의 행동이 그저 ‘충동’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의 힘을 키워야만 한다.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눈앞의 소녀- ‘시모에 코하루’는 내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묘하게 반가운 듯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 네엣……!”
내 등장이 그렇게나 기꺼운지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코하루. 아예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것이 아무래도 곤란하긴 했던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어주면서 코하루의 앞에 나섰다.
“이번엔 내가 도와주도록 하마.”
“……가, 감사해요.”
“별 말씀을.”
…굉장히 귀여운 대답을 내놓는 코하루였다.
이후, ‘에덴조약’ 스토리의 주역이 되는 인물이 보여주는 신선한 반응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그 광경을 오랫동안 쳐다볼 수는 없었다.
“젠장! 실크가 왜 여기에……!”
“도망간다!”
내 등장을 반기지 않던 이들이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기에.
나는 이따가 보자는 말을 남기며 코하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강하게 발을 박찼다.
콰앙─!!
경(勁)을 전신에 두르자 순식간에 상승한 신체능력이 내게 전능감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거의 유사 헐크 수준으로 이동이 가능해진 나였기에 순식간에 적들과의 거리는 좁혀졌다.
“너희 전부 가만히 있어라.”
“시, 시바아알─!!”
“오지마! 오지말라고오옥!”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귀신을 본 아이마냥 비명을 지르며 기뻐하는 테러범들.
테러범들은 가지고 있던 총을 내게 겨누어보지만 가볍게 주먹으로 통통 때려주니 총구가 예의바르게 90도 인사를 시전한다.
총구마저 트리니티의 아가씨다운 예절을 갖춘 모습에 기쁘게 웃고 있으니 테러범들의 비명은 더욱 거세져 갔다.
“끼야아아악! 이 괴물 새끼! 제발 좀 꺼지라고오오!”
“야, 야. 그러면 내가 니들 괴롭히는거 같잖아.”
“맞잖아, 이 미친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참 나.”
허탈하게 웃고 있으니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챙겨온 오토바이로 테러범들이 몸을 실기 시작한다.
내가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인드인 것일까.
뭐든 상관없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텐데.”
촤악-!
녀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동을 거는 것보다 내가 거미줄을 쏘아 오토바이의 바퀴를 묶는게 더 빨랐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않고 놈들이 들고 있던 총은 물론이고, 장착하고 있던 헷멧과 장비, 녀석들의 몸뚱이마저 거미줄로 꺼내와 가로등에 묶어버렸다.
촤악-!
촤악-!
마치 인형뽑기를 하듯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린 테러범들의 시끄럽던 입까지 거미줄로 막아버렸다.
“끝났네.”
순식간에 종료된 상황.
테러에 휩쓸리던 시민들도 한 순간에 범죄자들이 속박당하고 상황이 마무리되니 얼빠진 표정 반 감탄 어린 표정 반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뭐, 트리니티였으니 이 정도 시선은 예상했다.
다른 곳이었으면 빨리 끝났다고 오히려 좋아하던데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저런 반응인 것이다.
‘경(勁)까지 활용하는데 느릴 수가 없지.’
이제 이 정도 소란은 가볍게 제압이 가능했다.
애시당초 진짜 빌런이라 할 정도의 녀석들도 아니고 그냥 잡범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악의 시선과 박수 갈채를 뒤로 하고 가까운 곳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코하루를 쳐다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어떻게 보았니?”
“머, 멋있었어요…….”
“하하. 그건 다행이네.”
일부러 폼 좀 잡으려고 서두르긴 했다.
코하루에게 ‘나한테 맡겨’라고 해놓고 시간이 걸리면 그것만큼 쪽팔리는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코하루에겐 아주 멋있게 보인 모양.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일을 기억하도록. 방금 품었던 그 마음가짐도 잊지 않도록 하고. 앞으로 기대하마, 코하루.”
“……! 제, 제 이름을 아세요?!”
모를 리가.
무려 ‘에덴조약’ 스토리의 주역을 모를 리가 있겠어?
…물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코하루가 알아서 고민하도록 의미심장하게 웃어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차례 쓰다듬어줬을 뿐.
“믿고 있으마. 나중에 보자, 코하루.”
“네, 네에……!”
코하루의 영웅다운 모습을 보고 무심코 나섰지만 후회는 없었다.
나름 희망을 본 셈이었으니까.
동시에… 코하루를 통해 내가 만들어낸 변화 일부를 엿보기도 했으니.
트리니티의 문제. 게헨나의 문제.
두 학원의 갈등과 혐오, 그리고 분쟁.
이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해있지 않다.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변화해가야 할 문제지.
내가 독사같은 애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꿀밤을 갈기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내 목표는 씨앗을 심는 것이다.
게헨나를 섬뜩한 공포로 혼란을 잠재웠다면, 이곳에서는 올곧은 정의를 심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크게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코하루랑 정의실현부의 반응을 보았으니까.’
그 아이들이 내게 보여주던 호의와 동경.
영웅을 향한 관심과 의지만으로 아직 이 자치구에는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양면성을 지닌 독사같은 아이들이 아닌, 올곧은 정의의 별빛을 마음 속에 품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코하루에게 다가간 것도 그녀의 등을 살짝 떠밀기 위함이었지, 그녀를 직접 키우기 위함은 아니었다.
자그마한 변수로도 이야기는 바뀔 수 있다.
굳이 내가 나서서 코하루의 모든걸 바꿀 필요는 없지.
그저… 코하루의 심경에 아주 조금의 변화라도 일으켜 긍정적인 변수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야기는 더욱 수월하게 흘러가리라.
히후미가 도심에서 연설을 하며 이야기를 변화시켰듯, 그 누구보다 정의로운 코하루도 마찬가지의 역할이 가능하리라 보았기에.
그러니.
‘이것으로 충분해.’
아직 여러 가지 신경쓰이는 부분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충분하다.
이후의 일은 나중에 개입해도 되리라.
그러니.
“이제 돌아가볼까.”
트리니티에 선명히 심어진 별빛을 확인했으니.
이젠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미래를 바꿀 순간이었다.
또한, 손님도 맞이해야 했으니.
그렇게 나는 트리니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왕녀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멋있어…….”
현장을 떠나는 실크를 보며 코하루는 눈을 빛냈다.
코하루는 실크를 볼때마다 마음 속에서 뜨겁고도 강렬한, 뭔지 알 수 없는 감각이 점차 전신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전신에 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콩닥거렸다.
두근- 두근-
그 뜨거운 격동은 본래 유약하던 소녀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열망을 심었다.
말로는 엘리트라고 지칭하나, 실제론 자책과 자괴감으로 가득하던 마음에 처음 생긴 변화였다.
코하루는 쉴 세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팍을 부여잡곤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실크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이는 연심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단순하고, 평범하고, 원시적인 것.
사람이 사람을 보며 품는, 일종의 갈증과 같은 것.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방금처럼 실크에게 더 칭찬받고 싶다.
나도 실크처럼…….
동경심(憧憬心).
분명 그런 이름의 감정이었다.
동시에 그것은은 갈망이었고, 소망이었으며, 동시에 희망이었다.
본래 소녀가 갖추지 못한 감정의 파편이었다.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실크는 말했다.
코하루에겐 영웅의 덕목인 ‘용기’가 있다고.
코하루가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재능.
실크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빛나는 별.
그것은, 정의와 신념은 새겨졌더라도, 나약하고 소심한 육신과 정신의 영향으로 꽃 피우지 못한 소녀의 재능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도, 실크처럼…….”
그 재능을 누군가가 알아채준 순간, 코하루의 재능은 그 순간부터 꽃 피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느 순간부터 심어진지 알 수 없는 별빛.
그 희미한 빛이 점차 선명함을 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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