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한참을 외신의 품에서 따뜻함을 나눠 받던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떼었다.
-꼬르르륵
그 소리는 내 정면에서 들렸다.
“어머, 부끄러워라.”
말은 저렇게 하지만 외신의 태도에서 부끄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살짝 웃고 있었다.
“아…..배 고프시면 제가 뭐라도 준비해 올-”
-꼬르르륵
“……”
이번에는 내 쪽에서 난 소리다.
생각해 보니 거진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것이 떠오른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도 가져오겠습니다!”
벌떡 일어나는 나를 외신이 붙잡는다.
“앉아 있어. 내가 준비해 올 테니까.”
“아뇨 제가 해도 되는-”
외신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입을 막았다.
“쉿, 편하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외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멍하니 그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끄으윽!”
미쳤다. 나는 미쳤던 것이 틀림없다.
다 큰 놈이 어린 애처럼 여자 품에서 헬렐레 하는 꼴이라니.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온몸을 비틀며 꿈틀거린다.
그리고 멈칫, 멈추었다.
다시 떠오르는 그녀의 자애로운 미소와 포근한 품.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좋았지….’
부정 못할 사실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외신이 팔을 벌리고 서 있으면 품속으로 뛰어들 것 같다.
처음으로 느낀 그 따뜻함에 매료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살짝 몸을 일으켜 외신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꿈은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 신과 함께라면 아카데미를 벗어난 삶도 행복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방을 둘러보았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계급과 성적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그 둘 모두 최하급.
그런데도 황실의 후원을 받는 아카데미답게 가장 작은 숙소마저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작은 부엌마저 딸려 있어 간단한 조리도 가능할 정도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원체 정리정돈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나름 깔끔한 방이었지만.
굳이 다시 한번 청소를 시작한다.
외신이라도 신은 신이다.
신 중에서 깔끔한 것을 싫어하는 신은 없겠지.
돌아온 외신이 알아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지만…..알아보고 칭찬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
-삐걱삐걱
나무 의자가 달달달 흔들리고 있다.
물론 저 혼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원인은 그 위에 앉아 달달달 떨고 있는 내 다리다.
“…왜 안 오지?”
꼼꼼한 청소가 끝났다.
멍하니 기다리기도 뭐 해서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괜스레 부엌 식기들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도.
외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달달달달….멈칫.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이 굳었다.
“…진짜 꿈이었나?”
너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정말로 꿈이었나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쿵쾅거린다.
무의식으로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댄다.
꿈에서 깼을 때에 느껴졌던 그 부드러운 감촉, 그 따뜻한 숨결.
마지막으로 느껴졌던 손가락의 마디마디까지.
“…그게 전부 꿈일 리 없어.”
애써 마음을 가라앉혀 보지만 여전히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원래도 혼자 살던 기숙사다.
또한 원래도 혼자 살기 넓은 방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방은 너무도 공허한 느낌이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내 마음속 한 자리를 누군가가 차지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비어있는 지금,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추운 기분이 들었다.
-삐걱삐걱삐걱
의자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이어지고 있던 그때.
“다녀왔어~”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 깜짝할 새에 나타난 외신.
사라졌던 그 자리에 다시 서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뭔가를 양손 가득 들고 온 외신이 나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왜 놀라지?
그때 내 얼굴에 뭔가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걸 훔쳐보자 물처럼 투명한 액체였다.
“….눈물?”
울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외신은 들고 있던 것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에게 달려왔다.
“괘,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어, 어디?”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외신을 보자 뭔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모습.
평생 못 볼줄 알았는데.
“아뇨…그냥 다행이다 싶어서.”
“응?”
“꿈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요.”
“…….”
외신은 나를 말없이 바라보길 잠깐, 다시 한번 나를 그 푸근한 품에 넣어 주었다.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 외신은 나지막이 말한다.
“난 어디에도 안 가. 계속해서 네 곁에 있어 줄게. 그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턱을 살짝 잡아서 시선을 맞춘 외신은 말을 잇는다.
“가족이잖아?”
‘가족’ 그 한 단어가 가지는 따뜻한 의미에 가슴이 아려온다.
이제야 체감이 되었다. 진짜로,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 외신과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배고프지? 밥 먹자.”
일말의 아쉬움과 함께 품에서 나온 나는 그녀가 가져온 ‘재료’에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건….
“…저게 뭐예요?”
“응? 음식 재료인데? 마음에 안 들어?”
“……”
아니, 저건 기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바닥을 뒹굴고 있는 ‘그것’들은 딱 봐도 ‘평범한’ 고기나 ‘평범한’ 야채 같은 ‘평범한’ 음식 재료가 아니었다.
세상 살면서 처음 보는 형태의 그것들은….놀랍게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걱정 하지마 저거 사후경직이니까. 우주를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놈들이라 생명력도 질기거든.”
“…..”
우주를 넘나다녀? 또 그걸 죽였다고?
“…그럼 저걸 어떻게 먹어요?”
“구우면 돼.”
“…..?”
“응?”
아니 방금 우주도 넘어 다닌다면서요?
“일단 앉아 있어 봐. 내가 전부 해 줄 테니까.”
“아, 부엌이라면 저기-”
-화르륵
외신의 손짓에 허공에 불이 생겨났다.
꿈에서 보았던 빛처럼 분명 새까만 검은색임에도 빛을 뿜고 있었다.
굶주린 짐승의 혀처럼 불길이 넘실거린다.
“가구는 걱정 하지마. 이 불은 내가 원하는 것만 태우니까.”
그녀의 말대로 불길은 가끔 천장이나 벽에도 닿았지만 그을림은 남지 않았다.
“흐, 흐흥~”
외신은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쭉 늘어나더니 재료를 들고 와 불에 던졌다.
온도가 몇 도나 되는지는 몰랐지만 우주생명체가 가열될 정도라면 나 같은 인간은 뼈까지 남김없이 녹아내리리라.
“자, 됐다. 이름하야 올드 원 구이~”
올드 원이라고 하는구나.
2m는 될 정도로 커다란 몸체를 덮고 있던 강철 같은(더 단단하겠지만) 외피는 불에 의해 갈라져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양옆으로 뻗어져 있는 박쥐 같은 날개는 아예 튀겨진 것처럼 뻣뻣하게 말라 있었고, 아마 하체로 추정되는 촉수다발은…..
“에잇!”
외신이 통째로 뜯어가 불에 태워 버렸다.
그러곤 내 앞에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는다.
“여기 외피 사이로 드러난 살을 먹으면 돼.”
“……”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건가?
흘끔 쳐다본 외신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내가 이걸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은 없겠지?
머뭇거리는 내 태도에 외신의 표정이 서서히 죽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응?”
나와 올드 원 구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던 외신은 뭔가를 깨달은 듯 제 무릎을 쳤다.
“아하! 내가 먹여주길 원하는구나?”
“…예?”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온 외신은 식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맨손으로 올드 원의 외피에 손을 집어넣었다.
붉으스름한 살점을 양껏 뜯어온 외신은 그걸 내 입에 들이밀었다.
“자, 아~”
잔뜩 기대한 외신의 얼굴과 눈앞에 살점을 번갈아 본 나는 눈을 딱 감고 입을 벌렸다.
외신의 손가락이 입으로 들어왔다.
큰 살점이 입을 가득 메우는 것을 느낀 나는 한입 크게 씹어본다.
“!!!”
“어때? 괜찮아?”
처음으로 먹어 본 이 우주생명체의 맛은…
“……우와!”
그야말로 진미였다.
알맞은 불길로 익혀진 살은 탱글탱글 식감이 살아 있었고, 육즙(…육즙 맞겠지?)에서 나오는 풍미는 식욕을 돋구웠다.
끝맛이 약간 비리긴 하지만 그런데도 맛있다는 감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 반응을 본 외신이 기쁘게 웃었다.
“후훗, 입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아닌 게 아니라 내 인생을 통틀어서 최고의 음식이었다.
“엄청 맛있어요. 이런 맛은 처음이예요.”
“후후, 잔뜩 있으니까. 마음껏 먹어.”
“네!”
그때부터는 나도 나이프를 들고 적극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안 그래도 주린 배였기에 음식은 끝을 모르고 계속 들어갔다.
음식을 먹던 중간에 목이 말라오려 하자 귀신 같이 눈치챈 외신은 무언가를 건넸다.
크리스털 잔에 담긴 그것은 누가 봐도 물은 아니었다.
당연히 포도주도 아니겠지.
“…..”
무려 영롱한 황금빛 액체는 빛을 이리저리 반사하며 화려하게 빛났다.
의심쩍은 눈빛으로 그걸 바라보는 내게 외신은 몸에 좋은 것이니 쭉 들이키라 말했다.
“뭣하면 이번에도 내가 먹여줄까?”
…아주 잠깐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스스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액체가 혀에 닿는 즉시 나는 외신을 의심했던 과거의 자신을 욕했다.
달달한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약간의 탄산이 혀를 자극했다.
“캬아~”
보통 이렇게 달달한 음료는 끝맛이 살짝 떫을 만도 한데 이 음료는 끝맛까지 깔끔해 입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거 무슨 음료수예요?”
“황금의 벌꿀술이라고….있어. 몸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음료야.”
이런 맛에 건강까지 챙겨 준다니.
신의 음료라도 되는 걸까.
확실히 이 음료가 목구멍을 넘어가고 나서부터 몸에 활력이 돋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살점을 뜯던 나는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서야 외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안 드세요?”
“응? 아, 난 이런 음식은 잘 안 먹거든.”
뭔가. 나만 계속 먹은 것 같아서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분명 아까 전 외신에 배에서도 소리가 났었다.
그렇다면 배는 고프단 소린데…
“그럼 뭘 드시는데요?”
“그건 말이야…”
그 순간 외신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지금껏 외신이 한없이 자애롭고 상냥한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외신은 뭔가…야릇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어라, 잘못 건드렸나?’
“다 먹었니? 나도 이제….먹어도 될까?”
“…뭐, 뭘 드시는지..”
살짝 풀린 눈으로 다가오는 외신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으나.
“안 돼. 못 가.”
등 뒤에 외신의 머리카락이 벽처럼 서며 빠져나갈 길을 막았다.
“…저기..외신님?”
결국 눈앞까지 다가온 외신.
서로의 호흡이 섞일 거리까지 다가온 외신이 나지막이 말한다.
“외신이 아니라….릴리스라고 불러줘.”
“리, 릴리스? 뭘 하시려는지 알려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내 반응이 귀엽다는 듯 작게 웃은 릴리스가 양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아아, 너무 굶주렸어. 나, 나름 열심히 참아온 거니까….”
그녀의 얼굴이 점점 다가온다.
숨결에서조차 느껴지는 달콤하고 야릇한 향기에 머리가 어지럽다.
“릴리스…잠깐만-”
“걱정 하지마.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될 거야. 응, 잠깐이면.”
틀렸다.
이제 보니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누가 말한다고 말려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하아읍.”
“!!!!”
내 입술 위로 릴리스의 입술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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